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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18. 2024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섣불리 이해한다고 믿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에게 연민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그 말이 우리에게 종종 그러하듯 우월감이라는 함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연민이란 슬퍼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우리 인간이 불운 안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취약함을 일종의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드러나는 마음”(36)


   고통을 겪은 인간에게 우리는 연민을 갖기 마련이고, 그런 감정을 고귀한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조금 높은 위치를 점하는 감정을 연민이라고 느끼곤 한다. 게다가 연민은 한 인간을 고통이라는 관점으로만 보게 만든다. 그 외의 다른 면을 가진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 투마킨이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특별하다. 가까운 사람을 자살 혹은 사고로 잃은 사람들, 부당한 공권력의 힘으로 손자를 빼앗긴 할머니,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민으로 보지도 않고 분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프랜시스의 외모에 대해 조심스럽게 설명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특히 젊은 여성이 택배 봉투에 인쇄해 넣어도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음에도 우리는 어째서인지 그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러면서 그 사람을 향한 주의력도, 그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줄어들게 된다.” 한 인간에 대해 어떤 면을 가지고 성급하게 일반화하거나 판단해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인데, 작가는 줄곧 이런 태도로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살을 한 학생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는 학교에서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일반적인 학교 프로그램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여러 선생님들의 사례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 사례들을 보다 보면 일반화된 문제 해결이 얼마나 의미 없고 위험한지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가 통계에 대해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경계하지 않았고, 그 안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과 고통의 경우에도, 그 배후에 있을 법한 폭력과 가정불화와 사회적 배경 등의 문제들을 파헤치는 것만으로는 결코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일관된 메시지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무시하면 타인들은 곧 상징의 집합체로 변해 버린다. 우리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만 골라 담은 물통으로, 일종의 도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의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알아차리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점을 굳이 비틀어 숭고함에 가까운 무언가로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212)


   손쉽게 어떤 이론이나 분석으로 한 인간을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더 경계심을 갖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을 조금 더 미지의 영역에 두고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는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AI가 파악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들은 결국 다양한 인간상에 대한 통계에 불과한 것이므로, 우리가 우리에 대해 미래의 희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미답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작가의 글쓰기의 특성상, 한 번에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마치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차용한 것처럼 한 사람의 사례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것과 연결된 다른 사람의 사례 혹은 사회적 문제들을 바로 연결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던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어느새 하나의 메시지로 모이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느끼게 되는 즐거움이 색다른 점이며 작가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덤으로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작가와 영화, 노래 등은 독서를 통해 앎의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이것 또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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