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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l 13. 2024

<사소한 일>

팔레스타인에서 사소한 일이 의미하는 것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해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해자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종종 잊고 악마성으로 대신하며 안도하곤 한다. 하지만 가해자도 인간의 면모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인데,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그 고통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그가 자신의 위생을 철저하게 챙기고 극심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수색 활동을 지속하는 성실함을 보고 있다 보면, 우리는 그를 단순히 악마로 상징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알게 된다.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위생에 힘쓴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비슷한 모습을 가진 유형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나치 부역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자행했던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행동들은 유대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이유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1부의 화자도 동일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문을 품지 않고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다. 자신의 몸이 벌레에게 물린 고통은 생생하게 느낄 수는 있어도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녀는 무생물 혹은 동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옆에서 짖고 있는 개보다 더 못한 존재처럼 보인다.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것에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마치 방 안의 거미나 벌레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자기와 같은 편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소녀는 사람이 아닌 존재로 읽힌다. 


   그것과 대비되어서 2부의 화자는 자신에게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도 고통을 받는다. 단지 사 반세기 전 자신의 생일과 똑같은 날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우연의 일치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소녀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것은 화자가 인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와 동시에 공감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인데, 1부의 화자가 갖지 못했던 그 능력을 2부의 화자는 가지고 있어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두 명의 화자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게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지만 감정이 제거된 것처럼 보여서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인간과,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까지 감정을 이입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는 과도해 보이는 인간성을 가진 인간 중 어느 쪽이 더 함께 공존하기 좋은지 상상해 보게 된다. 작가가 의미심장하게도 1부의 화자는 3인칭으로 거리를 두고, 2부의 화자에게는 1인칭으로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어쨌든 공감하는 능력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작가가 두 화자를 서술하는 방식만으로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둘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1부의 화자에게 소녀의 죽음은 사소한 일일 테지만, 2부의 화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건이 가져다주는 파장의 크기는 어떤 사람에게 가닿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두 화자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느낌은 서늘한 것에 가까운데, 2부의 화자에게 주어진 결말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희망을 갖기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의 현실은 너무 엄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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