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인간의 정의는 무엇일까. 외적인 형태로 정의하자면 다양한 범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내적인 형태로 말한다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 가장 큰 변별점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렇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의 범주로 넣을 수 있을까. 복제인간도 인간의 정의에는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인간이 아님을 가르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이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이어온 이런 질문이 가속화된 것은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공지능과 함께 살고 있으며, 조만간 휴머노이드와 살게 될 것이고, 윤리적 문제를 따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복제인간이 같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화자들이, 특정되지 않는 무수한 화자들이, 내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나와 함께 살고 있을 “인간형” 존재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미 서사로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인지, 이제는 이런 일기처럼 보이는 구술 기록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6000호는 지구를 떠난 우주선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이 하는 말들을 읽다 보면 지구상의 한쪽 세계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우주선에서 사는 존재들은 그곳에 갇혀서 관리되며 살고 있다는 걸 알아서, 스스로를 테라리움 속에서 산다고 여기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CCTV와 자연스럽게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카메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위원회 관리자들에게 감시당하며 살고 있는 우주선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이한 것은 우주선 안에 있는 존재들이 매혹되는 어떤 물체들이 있다. 그들의 실체는 파악할 수 없지만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재미난 사실이다. 만약 지구를 관리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는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이 다양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에 집착하는 걸 보면서 의아하게 여길 것 같은데 우주선 안에 있는 물체에 대한 행동이 우리의 모습에 대한 비틀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지 않아서 쓸데없는 소비를 위해 무의미한 노동을 지속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패러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우주선 안의 존재들이 대체로 다 수동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다른 가치관을 갖거나 대안을 찾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소설은 우주선 안의 존재들의 인터뷰들로 이루어진 형식인데, 따로 서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머릿속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익숙한 듯 보이는 내용들도 조금씩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어서 신선하고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찾게 해 준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새로움을 확인하는 경험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