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마을 첫 방문
한량처럼 지내다가 4월부터 청년 마을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별의별이주, 로컬비긴즈, 강릉살자, 생텀마을, 가자미마을 등 팔로우 해둔 계정들에 들어가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탈서울이 낭만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목적으로 조금씩 실감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지역에 정착할 수 있을까? 내게 맞는 지역은 어떤 곳일까?
처음 가게 된 청년 마을은 예천의 생텀 마을이었다. 예천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2시간 반-3시간이 소요되는 비교적 서울과 가까운 경북이다. 게다가 경북도청 소재지라 영화관, 마트 등의 인프라를 갖춘 지역. 하지만 역시 차 없이는 이동이 쉽지 않은 지역이라 일주일 내내 다른 참가자의 차를 얻어 타며 다녔다. 지역살이에서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자가용이 필수라는 걸 새겼다.
예천 생텀 마을에서는 웰니스를 테마로 하여 관련 체험을 한 후 원데이 힐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6박 7일 일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필 예천 생텀 마을 프로그램을 신청하기 직전 피부염, 임파선염, 구내염의 염증 쓰리 콤보를 겪었다. 약을 먹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라는 말을 듣고선 의문이 들었다. 쉰다는 게 뭐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떼우는 게 쉬는 건가? 그런게 쉬는 거 맞나? 마음은 부산스럽고 불안감이 부글거리지만 일단 모르는 척 이불 속에 파묻혀 누워 몸을 챙기는 거, 그게 과연 쉬는 건가? 쉰다는 게 대체 뭐지?
예천에서 보낸 일주일은 지역 살이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간은 아니었으나, 필요한 줄 몰랐으나 필요했던 휴식을 만난 시간이었다.
쉼. 쉰다는 건 나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숨을 돌리는 것. 알아차릴 수 있도록 초점을 옮기는 것. 알아차림을 향하는 것. 그게 예천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찾은 답이다.
웰니스는 생소한 분야였다. 싱잉볼 명상, 먹기 명상, 요가, 태극권, 인생 그래프 그리기 등.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여러 체험들이 있었고, 그 활동들을 통해 비로소 나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많이 울었다. 명상을 하면서, 홀로 숙소에 앉아, 인생 그래프를 그린 후 이야기를 나누며 울컥 차오르던 눈물을 누른 채 돌아와 혼자 울었다. 알아차리지 못해 고여 있던 눈물을 밖으로 내보내며 비워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알아차려주자 꽁꽁 매여 있던 마음이 점차 느슨해졌다. 천천히, 깊이 숨을 들이 마실 수 있었다. 요즘도 생각날 때면 틈틈히 숨을 깊이 들이 마신다. 거대한 우주의 한 지점에, 기나긴 우주의 한 시점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나의 숨.
6박 7일 동안 나는 꼬박꼬박 예천 읍내의 유일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를 챙겨 마셨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걸어서 청년 센터로 출근을 했다. 숙소에서 5분-10분 쯤 걸으면 센터에 도착했다. 가벼운 가방을 메고 걸어 가는 단출함, 걷는 만큼 나아가는 단순함, 붐비거나 정체되지 않아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자유로움. 홀가분하고 단정한 마음으로 걸었다. 그 기분을 자주, 오래 느끼고 싶었다.
예천은 내게 알아차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주었고 숨을 돌리며 나만의 속도를 좀 더 믿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차근히, 천천히 원하는 곳을 찾아갈 것이다. 홀가분하고, 단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