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보가 달라졌어요
냉이 된장국은 아주 맛있게 잘 먹었어. 짐작건대 이것은 아마도 CJ제일제당의 맛? 아니라면 물개박수를 치고 싶은데? 어찌 됐든 아주 잘 먹긴 했지만 말이야.
요 며칠 아이들을 돌보면서 느꼈어. 우리 아내가 힘들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우 정말 이 녀석들. 낄낄거리면서 끝까지 장난치는 아이를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같이 들더라고. 순진무구해서 좋다. 그리고 순진무구해서 열받는다. 순진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어찌나 무구한지. 이렇게 어린 녀석을 다스릴 수 없다면 커서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싶어서 더 무섭게 엄포를 세게 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그래서 점점 더 목소리도 커지고 격해지는 내 모습, 이렇게 우스꽝스러울 수가. 고작 6살 아이와 기싸움을 하고 있다니. 패색이 짙은 전투를 하면서 깨달았어. 나는 아무래도 착한 남자, 착한 아빠 콘셉트로 가야 할 것 같다는 깨달음. 최후의 수단으로 협박을 하거나 체벌을 하면 먹힐 순 있겠지만 그래서야 아빠 체면이 하나도 안 서잖아? 일단 체면은 둘째치고 그렇게 성공한다 한들 나와 아이 모두 기분이 엉망일 테고. 그래서 한숨을 돌리고 생각했지. 난 역시 착한 아빠를 해야겠다. 우리 집의 법도는 엄마가 다스리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때? 자기도 동의하지?
애들과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났더니 자기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뒤늦게 공감이 되더라고, 참 많이 힘들었겠다. 요새 명상을 다시 열심히 해보려고 해서 그런지 마음이 더 촉촉해진 거 같아. 시집살이는 아니지만, 시댁 근처로 이사 와서 살면서 그 당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그 마음을 많이 못 헤아려준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무리 시부모님이 호의적이라고는 해도 자기는 타지에서 거의 혼자였을 텐데 말이야. 아이들도 어린데 남편도 무심했으니 참 많이 힘들었겠다. 이렇게 쓰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아. 엉엉. 지금 타이핑을 하다가 말고 멈칫하는 게 보이는지? 안 보인다면 상상해 봐. 당신 남편의 눈가가 촉촉해졌어.
공감은 가는데, 공감을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거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기를 지그시 바라보는 것. 잔소리하지 말고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 또 뭐가 있을까? 이 정도만 할 수 있어도 아주 훌륭할 것 같은데? 사실 가끔 나도 내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생각 좀 다물 게 하고 싶거든. 생각 스위치를 끌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자기랑 이야기할 때는 더 많이 꺼 두게. 너무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자기한테 쏟아내고 나면 나도 뒤돌아서서 한숨이 절로 나. 늘 그랬듯이 또 이렇게 해버렸구나 하면서. 그래서 부탁인데 내가 말을 또 쏟아내거든 손거울을 나한테 비춰주면 좋을 것 같아. 손거울을 우리의 Stop 싸인으로 하는 거야. 그걸 보면 이제 멈추라는 신호로 보여주는 거야. ‘너 지금 이러고 있다!’라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지. 그러면 나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해서라도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거야. 내 말은 줄이고 당신이 말할 수 있게. 그걸 내가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나 자신도 여유가 있었으면 하고. 한때 아는 상담 선생님께서 이런 조언을 하셨지. 아내를 내담자라고 생각하라고.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생각이 나긴 해. 내담자라고 생각을 해 보자. 내담자라고 생각을 해 보자. 자기 암시를 걸다가 매번 실패하거든.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어. 선생님은 아내를 내담자로 생각하고 살 수 있나요?
요 며칠 자기 마음이 어땠을지, 요새는 어떨지 생각이 들고 뭔가 느껴져서 이렇게 전하고 싶어. 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숨을 쉬고 있어. 봄비가 와서 그런가? 완연한 봄기운과 함께 찾아온 어떤 설렘 때문이지. 뭔가 마음속이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오랜만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좋아서 입을 헤 벌리고 있을 이파리의 엽록소가 상상되기도 해. 그래서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남세스러운 면도 있는 것 같고. 아 나도 모르겠어. 사춘기로 되돌아 간 걸까? 하여간 뭔가 마음이 움직이고 있으니 이럴 때 더 많이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면 좋겠다고 생각해. 눈을 지그시 마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예전에 어떤 워크숍에서는 부부끼리 아무 말 없이 눈 마주치고 있는 걸 시켜놓았다지. 일이 분 지나면 다들 눈물을 쏟았다고 하더라고. 원한다면 이런 것도 다시 해 볼 용의가 있어. 어쩌면 나보다도 자기가 피하려 할 것도 같지만. 그렇다면 우리 둘 다를 위해서 이런 시간이 더 필요할 거야. 아이들이 강철 가슴을 가진 철인 28호로 크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담는다잖아? 우리 서로 조금 더 촉촉해지면 어떨까? 벌써 사회화된 아이들이 남세스럽다고 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네, 허허.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우리.
지난번에 약속한 대로 두려움 없이 살아보려고 노력 중인데 쉽지는 않네. 오늘 부부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유도 어떤 두려움 때문이거든.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쉽게 가라앉지는 않아서 무작정 쓰기 시작했어. 지난번 편지를 받은 지도 시간이 좀 지났고. 그런데 쓰다 보니 확실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마워.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해 줘서. 그리고 요새 명상도 해보려고 하는 자기 모습이 참 대견스러워. 어쩐지 아빠 같은 소리지만 이 분야는 내가 자기보다 선구자니까 편하게 말할게. 참자아 Self 이야기를 다 하질 않나. 아이한테서 Self를 배우질 않나. 결혼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건 천지개벽이야.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새로운 인간으로 잘 살아보세. 명상하는 당신은 어딘가 낯설기도 하지만 자기 내면을 살피는 당신을 보면서 이제 우리 이야기가 조금 더 잘 통할 것 같은 기대도 생겨. 자기도 나도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내면의 안식처를 발견하길! 갑자기 또 나답게 어나더 월드 같은 소리를 좀 한 것 같은데 이게 내 모습이지 뭐.
여하튼 이렇게 서로 노력하고 있으니 분명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 믿어. 자기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다. 그런 희망을 품고 한 걸음씩 더 나아가보자. 어제보다 0.1%만 더 잘살아보자. 마르타는 분명히 잘할 거야! 나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낼 테니 응원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