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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22. 2023

9 아내_ 먹는 걸로 시작해서 먹는 걸로 끝나는 편지



웰컴투 더 식탐 월드! 어서 오세요. 먹는 것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오늘 도시락에 싸준 냉이 된장찌개는 어떨지 모르겠네. 맛있게 드세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 나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당신에겐 노력까지 해야 하다니 말이야. 내가 가진 습성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 음식은 그냥 배고프면 먹는 것,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 에스 오일이던 오일 뱅크던 상관없이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면 가까운 주유소에서 주유하던 사람이 말이야. 당신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 결심만으로도 그 마음이 느껴지고. 이제 좀 더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어. 칭찬해, 칭찬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요즘이야.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도 많지만 결국 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면 다 이루고 가지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지금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참 행복이지. 난 언제든 함께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마음 편히 그 순간을 즐기자.

     

 아이들과 공원에서 손 잡으며 느낀 마음은 뭔가 뭉클했어. 자기가 느낀 그 감동이 전해졌어. 차가운 아빠 손과 아이들의 따뜻한 손도 잘 알고 있고, 아이들과 요즘 많이 가까워진 것도 알고 있어.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그 모습 보면 참 기쁘고 행복해. 더 좋은 건 자기도 아빠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느끼는 충만한 기쁨, 감사. 의무나 책임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삶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느껴졌어.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볼 때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버겁고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통해 내가 깨닫고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면 잠깐의 힘듦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요즘이야. 


자기가 느끼는 부분, 나도 아이들과 지내면서 많이 느끼고 있거든. 우리 아이들은 나를 더 인간답게,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돕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산책을 할 때면 그 조그만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감동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곤 해. 분명 내가 큰 손으로 아이 손을 감싸고 있는데도 마치 아이들이 나를 품어주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 아이들을 통해 삶의 비밀을 하나씩 맛보고 있는 거지.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비밀. 누가 보기엔 그저 쓰고 좋아하지 않을 맛일지도 모르지만, 처음의 쓴맛 너머에 숨어있는 두 번째 맛은 모를 거야. 깊고도 뭉클한 맛. 그래서 사실 이제 좀 재미있기도 해. 다음엔 어떤 맛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도 되고 말이야.

     

요즘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재미에도 빠져있어. 예전에는 지시와 통제의 언어로 일방 소통했다면, 요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질문을 하고 있거든. 단답형 대답이 아닌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질문에 심혈을 기울이지. 조금만 방심하면 예전 습관대로 지시하거나 이미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질문이 나오거든. 아이들에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놀랍게도 기대 이상의 현명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어.

     

‘소인격체’에 대한 이야기도 해봤거든. 요즘 명상 공부하면서 내면 체크 하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는 나, 웃고 있는 나, 사탕 먹고 싶은 나, 안아달라고 우는 나, 그중에 진짜 나는 누굴까? 하고 질문했더니. 제제가 그러는 거야. 나 그거 알아. 스폰지 밥에 나왔는데, 대장 스폰지밥이 있어! 이러는 거야. 햄버거 만드는 스폰지 밥, 우는 스폰지 밥, 웃는 스폰지 밥 등등 여러 스폰지 밥이 있지만 그중에 대장이 있다는 거지. 제제는 정확히 알고 있었어. 무려 참 자아! Self라는 개념을 알고 있더라고! 내가 얼마나 놀랐게. 또 반성을 했던지.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면 분명 나도 어릴 때는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지금 그 사실을 잊고 부분의 나를 진짜 나로 착각하며 힘들어했을까. 하고 말이야.

      

오늘 새벽 명상하면서 제제의 말을 떠올렸어. 대장 마르타가 일에 압박을 느끼는 마르타를 보게 된 거지. 아이들 입학하고 적응하는 것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마르타도 만나고, 명상 끝나고 냉이 된장국을 끓일 생각을 하는 마르타도 만났고. 오만가지 잡생각이라 생각했던 그 부분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고 분명 나를 만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리고 분명히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려는 것 같은데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 대장 마르타는 이 부분들을 피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어. 그래서 오늘 명상은 매우 만족스러웠지. 일상에 적용하기까지 수행이 필요하겠지? 알아차림 훈련. 그러고 보니 이 명상모임 자기가 추천해서 하게 되었잖아. 고마워. 지금 내게 꼭 필요했고 도움이 되고 있거든. 심리상담도 꼭 받아볼 거야. 일단 명상모임부터 해보고. 아마 명상만큼 아니 또 다르게 좋을 거라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어.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우리가 참 좋다. 이야기 나누는 그 과정이 좋고, 기대 그 이상의 결과를 맛볼 때면 ‘인생이란 정말 재미있구나.’ 생각이 들어. 아, 결국 먹는 걸로 시작해서 먹는 걸로 끝나는 편지인가. 나야 나, 먹보 마르타. 오늘 냉이 된장국 맛있게 먹고 이따 만나.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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