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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Nov 15. 2023

소방안전 교부세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3)

(사진 - 3살 아이를 구하려다 불타버린 소방관의 헬멧(강원소방본부))


   지난 11월 9일은 소방의 날이었다. 많은 일반 국민들처럼 우리 소방관들도 그날엔 '어? 소방의 날이네'하고 생각했지만 그날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졌다. 그런데 이번 소방의 날에는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바로 소방안전 교부세에 관한 것이었다.


 https://youtu.be/ok2ERILFZjc?si=sjj_YG8Iyc7J2S45


   세금 중에 '소방안전교부세'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2015년부터 담배를 살 때 붙는 담배의 개별소비세중에서 45%를 재원으로 해서 안전과 소방분야에 각각 25%와 75%를 쓰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런 정책이 나오면서 소방안전 교부세가 소방관들의 헬멧이나 방수복, 그리고 소방장비등을 사는데 쓰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입고 쓰는 안전장비와 소방장비들이 대폭 확충되고 좋아진 것 같다.


   그전에는 어땠냐고?


   그전에는 정말 '열악'했다. 내가 소방에 몸담은 해가 2000년인데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 화재사건이 났었다. 홍제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나서 불을 끄던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은 부상을 당한 사고였다. 불이 난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소방관들은 인명구조를 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고 갑자기 그 집이 무너지면서 이런 인명사고가 난 것이었다. 더구나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그 집안에 있다던 사람은 불을 낸 그 집 아들이었고 그는 불이 나자마자 집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들의 희생과 노고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열악한 소방장비와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만 봐도 알수 있지만 당시에 소방관들이 불 끄러 갈 때 입는 옷은 불을 막아주는 '방화복'이 아니라 물에 젖지 않게 하는 일종의 '비옷'인 방수복이었던 것이다!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사고-소방관들은 일종의 '비옷'인 방수복을 입고 있고 공기호흡기를 멘 소방관은 아무도 없다.)

 

   정말 그랬다. 내가 처음 소방서에 들어왔을 때 불 끄러 갈 때 입는 옷은 그런 방수복이 전부였고 -이런 방수복은 폴리에스테르 재질로 되어 있어 불에 더 잘 붙는다.- 그나마 개개인 모두에게  지급되지도 않았다. 소방차 뒷좌석에 타는 화재 진압대원 3명의 것만 차고에 걸쳐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24시간  2교대로 갑(甲)부와 을(乙)부가 돌아가며 근무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갑부 대원이 입었던 방수복을 다음날 을부 대원이 입는 식이었다. 그리고 소방서에 처음 발령받은 나에게 선배 대원은 소방 장화는 창고에 가서 있는 것들 중에서 대충 골라 신으라고 했다. 그런데 발이 유독 작았던 나는 창고에 가서 제일 작은 방수화를 골랐지만 그나마도 헐렁거려서 제대로 걸음을 걷기도 불편했다. 다들 어찌나 그렇게 발이 크던지... 무슨 거인 장화만 갖다 놓은 것 같았다. 그 후로 홍제동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옷이며 신발이며 재질도 바뀌고 개인별로 치수에 맞게 지급되기 시작했다.


(화재 현장에서 우리의 생명줄인 공기호흡기-(주)산청 제공)


   당시엔 우리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기호흡기도 한 센터에 한 두대 정도밖에 없었다. 유독가스로 가득 찬 화재현장에서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기 공급원이지만 예산 부족 때문이었는지 모든 대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화재현장에선 마스크를 두세장 끼고 들어가 불을 끄곤 했다. 선배들은 그걸 메면 움직이는데 불편하다며 있는 공기호흡기도 제대로 쓰지 않고 불속으로 뛰어들곤 했다. 팀장님이나 센터장님도


   "이 정도 불에 무슨 공기흡기를 차노?"


   라며 소규모 화재에서 공기호흡기를 차려는 직원들에겐 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 맨몸으로 불을 끄고 오는 직원들을 칭찬하곤 했다. 사실은 공기호흡기도 부족했고 공기호흡기의 공병을 충전하는 충전기가 센터별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공기를 다 쓰고 나면 다른 센터에 가서 충전을 해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 소방관 선배들 중에 장수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짧은 수면시간, 그리고 화재현장에서 노출되는 유독가스와 화학물질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공기호흡기를 제대로 쓰지 않았던 그 시절엔 대원들의 호흡기에 이런 안좋은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제동 화재 이후론 그래도 공기호흡기도 대원별로 한 대씩 나오고 충전기계도 센터별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소방차 성능도 좋아지고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이나 일상복, 방수화와 작업화도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선배들은 '소방조직은 소방관들의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소방관들의 처우와 장비가 개선된 때가 바로 2015년 소방안전교부세가 도입되던 즈음이다. 그전에는 방화복이나 방수화, 그리고 소방장비를 떨어질 때까지, 헤어져 못쓰게 될 때까지, 고장이 나서 자체적으로 수리도 안될 때까지 입고 썼지만 그때부터는 소위 '내구연한'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 기간을 넘기면 '불용'처리를 하고 다시 새것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만 내구연한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반면 이때부터는 좀 철저하게 지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화복이니 구조 장갑이니 방수화, 작업화 등등 많은 것들이 소방관들이 쓸 만큼 지급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방수화가 구멍이 나서 못쓸까, 방화복이 헤어져 못쓸까, 장갑이 없어서 사제 장갑을 사서 쓸까 등등의 고민은 안 한다. 소방안전교부세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제로 구조장갑등을 사서 쓰는 직원도 많았다. 지급품은 성능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갑은 대원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니 돈을 좀 주고라도 사려는 대원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입사하던 그때는 방화복 안에 입는 활동복도 많이 지급되지 않았다. 치수도 제대로 안 맞았거니와 수시로 화재현장에 갔다 오면 땀에 쩔어 있었기 때문에 여벌이 없으면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소방서에서는 일인당 한두 벌밖에 지급되지 않아서 내가 직접 활동복 제작업체에 옷을 사러 간 적도 있었다. 내 치수를 재면서 그 업체 직원이 애처롭다는 듯이 날 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은 안했지만 그 표정은 '옷도 안주는 소방서 뭐할라 다니오, 그냥 마, 때리 치우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한심했을까,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소방복이 없어서 직접 돈을 들고 그걸 사러 왔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때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소방관들도 그렇게 사비로 부족한 소방복을 사던 시대였다.


   그런데 우리 소방관들의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시켜 준 '소방안전교부세'중에서 75%, 소방으로 가는 예산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이 무슨 119 소방의 날을 맞아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싶다. 나는 다시 소방복을 사러 제작업체에 가고 싶지 않다. 커다란 방수화를 신고 벗겨질락말락 하는 느낌에 미끄러질까 염려하며 불을 끄고 싶진 않다. 위험한 작업을 하는 만큼 나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장비와 옷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하게 화재진화 작업을 하고 싶다.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자 동시에 재난의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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