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환자가 피부 가려움증 때문에 구급차를 불러놓고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등 갑질을 하고 콧물, 가래로 신고한 환자가 샤워를 해야 하니 구급차를 30분 후에 오라고 해놓고, 그보다도 늦게 나와서 구급대원이 한마디 했더니 자신이 모멸감을 느꼈다며 민원을 넣어서 해당 구급대원은 '경고'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니 한 십 년 전에 내가 겪었던 악성 민원인이 생각났다.(정확히는 11년 정도 된 것 같다.) 세월이 십 년이 넘게 흘렀는데 어찌 우리 소방조직과 일부 악성 민원인들의 행태는 이렇듯 변함이 없을까?
위 글은 작년 7월에 10여 년 전 그 사건을 기억하며 내가 쓴 글이다. 이번 뉴스에서 언급된 이은용 구급대원과 그때의 나의 처지가 어쩌면 이리도 비슷할 수 있을까? 그는 콧물, 가래등 비응급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30분 넘게 기다려면서 환자를 병원에 이송해 주었고 나는 병원 간 이송은 우리가 안 해도 되는 업무범위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환자의 안위가 염려되어 병원에 이송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병원으로 가면서 이것은 구급차를 이용해야 할 사항이 아니니 다음부터는 구급차를 부르지 마라고 민원인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민원인은 그 말에 앙심을 품고 소방서에 민원을 넣었다, 그리고 그 민원을 받은 소방조직에서는 10년 전 나에게와 마찬가지로 이은용 구급대원에게 똑같이 '친절의무 위반'을 이유로 '경고'라는 징계를 내렸다.
정말 똑같지 않은가? 정말 판박이 같은 사건이 십여 년의 시차를 두고 그대로 일어났다. 그동안 소방조직이, 그리고 일부 악성 민원인들의 태도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그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라때'는 이런 사건을 겪고도 그냥 구급대원 혼자서 삭히고 말았다면 요즘은 그래도 소방노조가 발족되어 이런 사건이 공론화되고 뉴스에도 보도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사건이 보도되고 여론이 A구급대원을 감싸는 쪽으로 몰린다면 이 사건은 내가 10년 전에 겪었던 사건의 마무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겠다. 그때는 얼마나 많은 구급대원이 이런 악성 민원인과의 트러블로 마음고생을 했을까?, 구급대원의 편을 들어주어도 모자란 소방 조직이 이렇게 그들에게 징계나 내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은용 구급대원과 같이 힘든 구급업무를 수행해 가며 구급차 안에서 이런 구급차 진상들과 마주할 후배 구급대원들을 생각하며 내가 겪었던 구급차 진상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물론 세월이 10년, 2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아직도 이런 구급차 진상들이 있기는 할까 싶다가도 위의 뉴스를 보니 10년 전에 내가 만난 진상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아직도 이런 구급차 진상들이 여전히 존재할 거란 확신이 든다.
1. 전화로 빨리 와 달라는 진상
출동 지령서가 떨어지면 구급대원들은 먼저 환자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요새는 워낙 네비게이션이 잘 돼 있어서 금방 환자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정확한 위치를 못 찾아 헤멜 때도 있다. 산동네나 골목길, 시골길등 네비게이션에서 정확히 위치가 안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찾았다 해도 실상 환자는 거기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지령서에 나와 있긴 하지만 환자의 상태도 다시 한번 확인해서 거기에 맞는 구급장비도 챙겨야 하므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건다.
"따르릉~여보세요, 구급대원입니다."
"신고한 제가 언젠데 아직 안 오는 거야, 빨리 와!"(다짜고짜 반말이다.)
"네, 다 와 갑니다, 그런데 정확히 어디가 아프세요?"
"아까 말했잖아,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빨리 와!"
진상은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겨우 환자가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면 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구급대원을 노려본다. 왜이리 늦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환자 중엔 응급환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술에 만취되었거나, 뉴스에 나온 두 진상처럼 콧물, 감기, 피부 가려움증 등 굳이 구급차를 부를 필요가 없는 가벼운 질병이나 부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진상들은 이것저것 요구하는 바가 많다.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굳이 먼 대형병원으로 가 달라든지, 다른 시도의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는 식이다. 게 중에는 교통비가 아까워서 아프다는 핑계로 구급차를 공짜로 타려는 무임승차객이 꼭 존재한다.
2. 병원에 가려는 자와 안 가려는 자
일단 119에 신고를 했으면 당연히 병원 갈 것이고 병원에 이송을 하면 구급대원의 임무는 끝이 난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족들은 환자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데 환자는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물론 그 반대경우도 존재한다.) 환자가 병원에 가기 싫다는데 이송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다. 그렇게 하면 가족들이 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하지 않고 갔다고 민원을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쉽게 의견이 맞아지면 좋은데 정신질환자라든지 만성질환자의 경우 그런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힘들다. 환자에 대한 가족들의 신뢰와 인내가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 환자는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런 진상들의 특징은 구급대원이 현장에 온 후에야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입원해야 하는데 이것 챙겨야지, 저것 챙겨야지, 위에서처럼 샤워를 해야 하니 기다려 달라는 진상도 있다. 그런 걸 다 기다리다 보면 하 세월이다. 보다 못해 진상에게 한마디 했던 이은용 구급대원의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3. 구급차 안에서 갑질하려는 진상
대다수의 응급환자들은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에게 협조적이다. 자기 생명이 위태로운데 그걸 구하러 와준 사람이 혈압을 재고, 혈당을 재고 인적사항을 파악하는데 협조를 잘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도 협조가 안 되는 몇 퍼센트의 진상은 꼭 존재한다. 보통 주취자가 많은데 인적사항이나 생체 징후를 측정하는데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 폭행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왜 구급차를 불렀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그리고 또 거기서 갑질하려는 진상까지 있다. 위 뉴스에서 구급차에 의사가 있느냐, 에어컨 필터는 갈았는지 등등을 물어보던 피부 가려움증 여성처럼 갑질을 하려는 진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들은 의료지식을 총동원해서 이 검사는 안 해주냐, 저 치료는 안 해주냐, 하며 선을 넘으려 한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19구급차는 병원이 아니다. 의사가 타고 있지도 않고(물론 화상을 통해 원격 의료지도는 받을 수 있다.) 병원에 있는 검사장비와 의료기기를 다 갖출 수도 없다. 응급환자들의 응급처치에 꼭 필요한 검사장비와 의료기기만 적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진상들은 구급차 안에서 대형병원급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원하며 그걸 안 해주면 구급대원들의 자질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급차 안에서의 의료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며 민원을 넣는 것이다. 세상에나~ 그런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공짜 구급차를 타지 말고 자기 돈을 내고 의사가 동승한 사설 구급차를 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며 구급대원에게 징계를 내린 소방조직은 또 어떤가?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4. 병원에 가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
병원에 도착해서도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진상이 있다. 무료로 아픈 사람을 병원까지 이송해 줬으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때는 그래도 그렇게 인사하고 돈까지 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받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요즘은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진상들만 늘어난 것 같다.) 이건 뭐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놨더니 뭐 내놔란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진상들이 많다. 응급실로 가지 말고 외래로 가주면 안 되겠냐(응급실 비용이 비쌀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부터 병원에 안 갈 거니 집으로 다시 보내달라는 사람(이런 사람 마음은 순간적으로 변한다.)도 있다. 그건 안된다고, 규정에 없는 일이라고 하면 또 불만을 표시한다. 잘 달래지 않으면 내일 어떤 민원이 들어올지 모르므로 구급대원은 최대한 그들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지만 사실 뒷일은 감당 못한다. 그들이 어떻게 민원을 넣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구급대원은 구급업무 중에 본연의 업무인 환자 상태파악과 응급처치 외에도 구급차 진상의 갑질, 민원인의 민원, 주취자의 폭행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비번날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소방서나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경위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와 이은용 구급대원처럼 경고 정도의 가벼운 징계에서부터 파면이나 해임처럼 무거운 중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밤새 잠 못 자고 출동하면서 구급차 진상에 시달리는 그 일을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요즘엔 구급차에도 이용료를 받자는 여론이 있는데 나도 거기에 적극 찬성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1만 원 정도의 이용료를 받는다면 현재의 구급건수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공짜 택시를 이용하듯이 구급차를 이용하려는 얌체족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응급환자도 아니면서 응급환자처럼 구급차를 이용하려는 진상들도 배제될 것이다. 그럼 진짜 응급환자는 어떡하냐고? 그들에겐 구급차 이용료 1만 원을 받지 않으면 된다. 병원에 가서 전문의가 전문 의료장비를 이용해서 이 사람이 진짜 응급환자인지를 판정하고 진짜 응급환자라면 구급차 이용료를 병원비에 포함시키지 않고, 진짜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구급차 이용료를 병원비에 포함시켜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받은 재원은 또다른 좋은 곳에 쓰면 된다.) 그러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몰랐던 환자도 병원에 가는 교통비라 생각하고 1만 원의 이용료를 내는 데 그렇게 불만을 제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급건수가 줄어들고 대형병원 응급실을 진짜 응급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요즘 문제가 되는 '응급실 뺑뺑이'나 '응급실 의료공백'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문제가 되는 제도는 점점 개선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10년 전이 다르고 20년 전이 다르듯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도 점점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의료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의 눈높이는 높아져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비해 소방의 구급정책이나 우리 나리의 응급의료체계는 10년 전이나 20년 전과 같이 거의 제자리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걸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급대원의 고통으로 오롯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응급 의료 수요를 감당하는 구급대원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징계라니...
하루속히 이런 구급차 이용료 정책이 실시되어 우리의 구급대원들이 구급차 진상의 갑질이나 민원인들의 민원, 주취자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나 구급 본연의 업무인 환자 이송에만 매진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그리고 경직되어 있는 소방조직이 유연한 사고로 구급대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소방조직의 한 선배로서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