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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an 06. 2024

안전 불감증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7)

얼마 전 서울 방학동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30대 남성 2명이 대피하다가 숨졌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아파트 화재 시 대피방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2)"라는 글을 썼었다. 


https://brunch.co.kr/@muyal/152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을 쓰고 난 후에도 아파트 화재가 잇따르는 것이 아닌가? 경기도 군포시, 수원 영통구, 부산 영도구 등,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약 한 달간 25건의 아파트 화재가 발생해서 10명이 숨졌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 한국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전불감증'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른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면 왜 그런가 생각해 보고 우리 아파트에서는 화재가 날 수 있는 요인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한데 '설마 우리 아파트에서 저런 화재가 나겠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많은 것이다. 우리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을 워낙 많이 겪어봐서 '안전 민감증'에 걸릴 만큼 어디서나 안전을 생각하는 측면이 많은데 일반 시민들은 그런 사고방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사소하지만 자칫하면 화재 발생 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았다. 


https://brunch.co.kr/@muyal/103


첫 번째, 우리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방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화기 사용법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요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소화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아 대부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소화기 사용법을 교육하면서 느낀 바로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3.3kg  ABC 소화기)


위 사진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화기다. 불이 나면 불이 난 곳으로 이것을 가지고 가서 검은색 호스를 불이 난 곳으로 향하여 손잡이를 움켜쥐면 소화약제가 나오면서 불을 끌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화기 손잡이 사이에 달린 안전핀이다. 이 안전핀을 뽑지 못하면 소화기를 움켜쥐지 못하고 따라서 소화약제를 내뿜어 불을 끌 수도 없다. 그럼 이 안전핀을 뽑으면 되지 않느냐고? 여기에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이 안전핀이 어디로 도망(?) 가지 못하도록 케이블 타이로 안전핀을 손잡이에 고정시켜 둔 것이다. 화재가 나면 안전핀을 뽑아야 하는데 이 케이블 타이가 너무 바짝 조여져 있어 안전핀을 뽑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불이 나면 일단 처음(?) 사용해 보는 소화기에 당황하는데 케이블 타이가 바짝 조여져서 안전핀을 뽑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 가위나 닛빠(?) 없어?"


당황한 마음에 이렇게 케이블타이를 끊으려고 가위나 닛빠(?)를 찾는 순간 골든 타임은 놓치고 자체 초기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벌써 물 건너가는 것이다. 눈앞에 불은 점점 커지는데 안전핀을 조여놓은 케이블 타이를 끊지 못해 소화기 손잡이를 눌러 불을 끌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안되니까 소화기를 불 속에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투척용 소화기)


투척용 소화기는 따로 있다. 바로 위와 같이 생긴 것이다. 그럼 일반 소화기 안전핀에 달린 케이블 타이는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바로 이렇게 제거 야 한다. 이렇게 케이블 타이를 제거하고 나서 소화기를 사용한 후 다시 안전핀을 집어넣어 놓으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데 이 케이블 타이를 제거하는 요령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로 좀 나이 든 사람들이다. 요즘은 학생부터 직장인등을 대상으로 한 소화기 사용법 교육도 많고 유튜브 등에도 자세히 잘 나와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를 비롯한 나이 든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소화기 사용법 교육을 받을 때는 이런 케이블 타이가 달려있지 않은 소화기로 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은 위 동영상을 보고 화재 초기에 소방차 한대와 맞먹는 위력의 이 소화기를 사용해서 꼭 초기 진화를 성공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소방시설이 고장이 난 상태, 혹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많은 아파트들이 방화문을 개방한 상태로 방치해 화재 피해를 키웠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또 많은 곳에서 소방시설이 고장 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동화재 탐지설비'라는 긴 이름을 가진 소방시설이다. 


화재를 탐지하여 그 신호를 수신기에 보내주는 감지기(좌)와 그 신호를 받아 각종 소방시설을 작동시키는 수신기(우)


이 '자동화재 탐지설비'라는 소방시설은 크게 감지기와 수신기라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감지기는 화재가 나면 열이나 연기등을 감지해서 수신기로 신호를 주게 되고 이 신호를 받은 수신기에서는 경종(사이렌)을 울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화재진압을 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자동화재 탐지설비들이 고장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서 이런 역할들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신기는 평소에 위 우측사진처럼 모든 스위치에 아무 표시가 없거나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어야 하고 빨간색 불이 켜지면 안 된다.( 사의 숫자 111은 전압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정상임)


(얼마 전에 가족들과 갔던 음식점에 있던 수신기)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정상적으로 관리되는 수신기는 극히 드물다. 위 동영상은 얼마 전에 내가 가족들과 갔던 식당에 있던 수신기인데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자세히 보면 '소화전 보조'라고 되어 있는 회로에서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이는 소화전 보조펌프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화전 주펌프와 보조펌프는 물탱크에서 소화전까지 평소에 일정한 수압을 유지시키고 불이 났을 때 작동하면서 소화전까지 원활하게 불을 끌 수 있도록 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작동한다면 소방배관 어디선가 누수가 있어 압력이 낮아지고 있거나 회로상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평소에 빨간 불이 뜬다면 바로 정비해서 빨간 불이 뜨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불이 나면 호스를 꺼내 불을 끌 수 있는 소화전(좌)와 그 소화전까지 수압을 유지시켜 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소방펌프(우)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이것보다 더 심하게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경종과 지구경종(전체 사이렌과 층별 사이렌)이 울리지 못하게 스위치를 눌러놓은 경우다. 이렇게 해 놓으면 불이 나도 사이렌이 울리지 않기 때문이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놓치게 된다. 당연히 인명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는데 이런 기능들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서 보통 두세 개, 많게는 대부분의 회로(하나의 회로는 하나의 방호구역, 혹은 하나의 소방시설을 의미한다.)에서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이렇게 방치하는 이유는 바로 오작동 때문인데 화재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지기에서 먼지나 습기 등의 이유로 오작동이 발생해서 수신기에 신호를 주게 되고 이런 신호를 받아 수신기는 사이렌을 울리고 소방시설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오작동이 나지 않도록 시설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스위치를 눌러 사이렌등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불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소방시설을 관리하라고 보통 건물마다 '소방안전관리자'라는 직책을 따로 두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보통 다른 업무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별 관심이 없을 때가 많고, 있어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그런 이유들에 관해선 다음에 다시 기술하려 한다.) 제대로 이것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소방시설업체에 위탁해서 관리하는 대규모 대상들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 이런 대규모 면적에 해당하지 않는 소규모 대상들은 아직도 이렇게 관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어떤 수신기는 빨간 불이 하나도 안 들어와 있어 너무 신기해서 자세히 보았더니 이 수신기의 전원 자체를 차단해 놓은 것이었다.(이런 행위들은 모두 소방법에 저촉되어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의 과태료나 벌금 대상이다.)


이러니 항상 화재가 나고 나면 사이렌이 울렸는지, 안 울렸는지,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안 했는지가 뉴스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 관심 없이 화재가 나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방치하고 있다가 화재가 나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그제야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면서 서로 니탓, 내 탓하며 핏대를 세우는 것이다. 정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 때라도 제대로 외양간을 고치면 되는데 문제는 딱 그 시간만 지나면 다시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어디선가 화재가 나면 또 똑같은 문제가 되돌이표처럼 발생하는 것이다. 


2024년이 시작된 지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났다. 올해는 뭔가 우리 소방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 이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에 사로잡히지 말고 우리 주위의 소방시설을 모두가 둘러보아 화재가 났을 때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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