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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Dec 27. 2023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2)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6)

(사진-서울 도봉구 방학동 화재(중앙일보))


며칠 전 크리스마스 새벽에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노부부가 사는 3층에서 난 불이 4층으로 번지는 바람에 4층에 사는 30대 아빠가 불을 피해 온 가족을 데리고 뛰어내렸다가 숨지고, 10층에 살던 30대 남자도 연기를 피해 가족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도 마지막으로 대피하다가 11층 계단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https://youtu.be/9y561ywTORI?si=RbfMM5SFrwWUj0tD


불이 난 3층에 거주하던 노부부는 불이 나자 바로 바닥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지만 4층에 거주하던 아빠는 3층에서 불이 올라오자 베란다로 피해 있다가 어쩔 수 없이 7개월 된 아이를 안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엄마도 2살 된 아이를 바닥에 던지고 자기도 뛰어내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들과 부인은 아파트 경비원들이 깔아놓은 재활용 폐지더미 위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지만 아빠는 머리부터 땅에 부딪히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소식을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들으니 마음이 심란했다. 더구나 이 화재사고는 지난가을에 내가 여기에 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과 판박이 사고가 아닌가?


https://brunch.co.kr/@muyal/136


그때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나자 7층 베란다에 매달려 있던 아빠와 장모가 떨어져 숨지고 4살 배기 아이는 큰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와 이번 사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번 화재사고에서는 계단으로 대피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아파트는 복도에서 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을 평소에 열어놓아서 3층에서 발생한 연기가 계단실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화문은 도대체 뭘까? 그리고 위 뉴스를 3분쯤부터 보면 '계단통로가 굴뚝 역할을 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도대체 무슨 뜻일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텐데 물과 공기는 데워지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걸 좀 과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대류현상'이라고 한다.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서 차가워지면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순환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 단독주택과는 달리 뜨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갈 곳이 없다. 위에는 또 다른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뜨거워진 공기는 당연히 지면에서 옥상까지 일직선으로 뚫려있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공간을 통해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가 났을 때 뜨거워진 공기는 바로 '연기'이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피난하다가 전기가 끊어지게 되면 엘리베이터는 거기서 멈추게 되고, 문도 안 열리게 되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뜨거운 화염과 올라오는 연기에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tv나 언론에서 말하는 화재 시 대피요령에 보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통해 탈출하라'는 말을 항상 하던데 그것은 또 왜일까? 화재가 나면 계단도 당연히 연기로 가득 차 있을 텐데 말이다.


(아파트 복도에 있는 방화문(중앙) - 항상 닫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위쪽에 자동페쇄장치(우)를 갖춰야 하고 이래쪽엔 스토퍼(노루발)등을 사용해 열린 채로 고정하면 안된다(좌))


그 이유는 바로 계단에는 이런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아파트 복도와 계단실 사이에는 대부분 이런 방화문이 있다. 이 방화문이야말로 이번 화재에 있어서 키 포인트다. 이 방화문은 아래층에서 난 화재의 화염과 연기가 계단을 통해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3층에서 화재가 났더라도 이런 방화문이 설치되어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면 계단을 통해 화염이나 연기가 위층으로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4층과 10층에 살던 주민들도 안전하게 계단으로 대피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공동주택에는 보통 60분+ 방화문이나 60분 방화문이 설치되는데 이것은 60분 이상 화염과 연기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시간이면 소방관이 도착할 수 있고 스스로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대신에 화재 시 방화문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항상 닫히는 구조로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의 윗부분에는 자동폐쇄장치를 달아서 스스로 닫혀야 하고, 그래서 문 아래쪽에 스토퍼(노루발)를 달아 고정시키는 것은 당연히 소방법에 저촉되어 불법인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아파트에서 이런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 있지 않을까?, 당신이 사는 아파트에도 방화문이 이렇게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에 화재가 난 아파트에서도 이 방화문을 개방한 상태로 방치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많은 아파트에서 통행의 편리를 위해서, 자동폐쇄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화문을 벽 끝까지 열어놓거나 노루발이나 적치물을 이용해서 열린 채로 고정시켜 두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열린 채로 고정시켜 두면 사람이 통행할 때 조금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화재가 났을 때 계단실이 소위 '굴뚝 역할'을 해서 온통 연기로 가득 차게 된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경보음이 들릴 때, 계단을 통해서 탈출하려고 집을 나왔는데 계단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4층의 아빠와 마찬가지로 다시 집 베란다로 가서 지상으로 뛰어내리거나 10층의 30대 남자처럼 연기를 뚫고 아래로 내려갈 수 없어 반대로 옥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 화재가 났을 때 연기의 속도는 사람의 보행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연기의 이동 속도는 수평 공간일 때 초당 0.5~1m

                              수직 공간일 때 초당 2~3m

                                  계단실에서는 초당 3~5m로

사람의 보행속도인 초당 0.5m보다 훨씬 빠르다. 이것이 바로 10층에 살던 30대 남자가 11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유이다.


그는 다른 가족들을 다 대피시키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화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계단실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려 했지만 그 연기를 뚫고 1층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때라도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대문을 닫고(아파트의 세대별 대문은 대부분 방화문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적어도 60분 정도는 외부의 화염과 연기를 막아줄 수 있다.) 그 안에 머물렀다면 오히려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나는 경험은 평생 동안 거의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처음 맞이한 위기 상황에서 그는 멘탈붕괴와 동시에 결정장애가 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반대쪽인 옥상으로 탈출경로를 변경하는 안타까운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 층도 못 가 그를 뒤따라온 유독가스에 질식사하는 것이었다.


뉴스에 나온 다른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오지 않고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틈을 막고 버틴 사람들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tv에 나오는 대피요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당시의 상황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생존율을 높인 것이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세월호 사건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모두 따르지 않고 상황을 살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배를 빠져나오라고 소리친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와서 지난 일을 가정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지만 아마도 누군가 그런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소신 있게 행동했더라면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화재 현장은 모두 다르다. 내가 23년간 출동했던 화재 현장은 모두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화재가 발생한 원인부터 타고 있는 가연물질, 화재가 난 장소, 그곳에 있는 사람들, 피난요령과 피난통로, 화재 진압방법들이 모두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화재가 나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적용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화재 시 대피요령은 참고만 하고 일단 내가 사는 아파트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해야 한다. -불이 나기 전에 만약 불이 나면 난 어디로 해서 어떻게 대피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통해 피난하라는 피난 메뉴얼이 있긴 하지만 복도와 계단실 사이의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가 계단실에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을 적용하면 안 된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자신의 집 방화문을 닫고 그 안에서 소방관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위 뉴스 후반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더 많은 사람들이 화재 시 대피요령을 숙지하고 상황에 맞게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평소에 체계적인 소방훈련을 적극적으로 받아서 평생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아파트 화재 사고에서(평소에 소방시설을 철저히 점검해서 이런 일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화재로부터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화재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30대 남성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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