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느낄 정도로 이것은 24년간 소방서 생활을 해 온 나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내가 처음 소방서에 들어오던 2000년대 초에도 족구와 탁구는 소방서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했다. 그 때는 보통 어느 소방서든지 출동이 없다면 오전 시간 장비점검과 훈련이 끝나고 나서 오후 3시 이후에는 탁구나 족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팀워크와 체력단련을 겸한다는 미명(?) 아래 선임 고참들의 지시가 떨어지면 후임들은 족구 네트를 치고 탁구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몇십 년씩 소방밥을 먹은 고참들에 비해 이제 들어온 후임들은 그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고참들은 못하는 후임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잘하라고 이렇게 저렇게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내가 아는 한, 후임 직원의 귀를 깨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감에서 그 사건에 대해 용혜인 국회의원이 소방청장님을 상대로 질의(?)하는 모습-아따, 마~참 매이(?) 하시네~)
나도 사실 탁구나 족구등 구기종목에는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고참들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어이(?), 이 봐라,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머리는 머 모자 쓰라고 있는 줄 아나?"
소방(?) 족구는 상대편이 써브를 넣으면 우리 편 수비수가 그걸 받으면서 발이나 머리로 리시브를 하게 되는데 보통 뒤에 선 후임들이 수비를 하고 리시브를 받게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어설프게 발로 받으면 공이 잘못 튕겨져 라인 밖으로 나가거나 다음 중고참이 토스하기 좋은 지점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그 토스를 받아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스트라이커(보통 최고참이 맡는다)는 뒤에 선 후임들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해지고 수비를 하고 있던 후임들은 이제 발로 받기를 포기하고 대신 허리를 굽힌 채, 머리를 디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내 머리가 부서질지라도, 그 공격을 헤딩으로 받아 내겠다는 각오의 눈빛을 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시합에서 지면 팀장을 비롯한 고참들의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그 분위기가 출동을 비롯한 팀 전체 분위기로 이어져 소방서 센터 생활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을 후임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24시간 같이 생활해야 하는 고참들이니 그들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허리를 굽히고 강력하게 날아오는 족구공에 머리를 갖다 대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노라면
'내가 이러려고 소방서에 들어왔나?'
하는 자괴감이 머리를 짓눌렀다. 마치 군대에 다시 입대한 느낌이었다. 국감에서 용혜인 국회의원이 질의하는 장면을 보면 족구를 못한다고 귀를 깨무는 갑질을 한 팀장이나 사건을 조사한 감찰 담당관등 윗선들이 모두 특수부대 출신들로 한통속(?)으로 얽혀있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그들이 이 소방판(?)을 이렇게 짜놓았는지는 몰라도 내가 보낸 한 20년 동안의 소방서 생활은 마치 다시 군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센터장, 팀장들과 중고참, 후임대원으로 이어지는 계급체계도 그렇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나 '분대' '진압' '작전'등 군대식 용어도 그랬다. 하지만 그 20년 동안의 세월은 나에게도 그 고인 물 같던 고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패턴을 그대로 따르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소방서 내의 음주문화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그 타이밍은 여지없이 족구나 탁구등 스포츠 활동을 하고 난 직후였다. 경기가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 팀에서 돈을 내고 후임들은 치킨을 시키고 술을 사 왔다. 가끔 삼겹살을 굽는 때도 있었다. 나는 구기 운동만큼이나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족구와 탁구 실력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늘어났고 그와 비례해서 주량도 늘어났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걸치고 나면
'그래, 인생 뭐 있어?'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24시간 소방서에서 버티려면 이렇게라도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고참들의 모습에 점점 동화되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가 중고참이 되어 토스를 올리게 되자 어설프게 발로 리시브를 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공을 보내는 후임 직원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야!, 거기, 머리를 좀 써라, 머리를!, 머리는 모자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응?)"
하며 내가 신입 때 들었던 고참들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따라 하는 내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어쩐지 어색하기도 했지만 내가 입고 있는 소방복만큼이나 그런 루틴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소방복을 입지 않고는 일할 수 없는 곳이 소방서이듯 이런 루틴을 따르지 않고는 일하기 어려운 곳이 소방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언제부턴가 그들처럼 서서히 고인 물(?)이 되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어떠냐고?, 내가 스트라이커를 맡냐고?, 그런 건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이유는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 때문이다. 요즘 들어오는 신입 직원들은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강하다. 고참들이 족구를 하잔다고 무작정 족구 네트를 설치하진 않는다. '족구 하고 싶은 건 니네 사정이고요...'라는 그들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출동과 담당하는 업무 외의 시간은 '노타치'라고 한다면 고참들도 이제는 할 말이 없어진 시대가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소방서 내에 만연했던 '갑질 문화'가 이제는 점점 청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떼는 그저 '원래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넘어갔던 고참의 루틴에도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이의제기를 하는 후임들이 늘어났고 그러면 최근에 생긴 '감사감찰계'라는 곳에서 득달같이 나와서 사건의 전모를 조사하고 갑질을 한 직원에게 징계를 주는 시스템이 점차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방서의 음주문화는 거의 15년 전쯤엔 모두 자취를 감추어서 이제는 근무시간에 술을 찾는 직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뉴스가 나왔는데 아직도 이런 간 큰(?) 팀장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이었다. 족구를 못한다고 후임 직원의 귀를 깨물다니... 내가 소방서 생활을 시작한 2000년 초에도,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소방서 갑질문화가 소방청장님 말씀대로 발본색원(?)되어 소방서에서 모두 자취를 감추고 우리 고참들은 비록 그런 갑질 속에서 수십 년을 근무했지만 새로 들어오는 새내기 소방관들에게는 그런 딴 세상 라떼(?) 얘기는 정말 '전설의 소방서(?)'편에서나 볼 수 있는 까마득한 과거 의 일로 묻혀지기를..., 그들은 정말 귀하고 값진 한 사람의 정당한 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재난현장에서도 소신 있게 자기가 맡을 일을 잘 해낼 수 있기를, 라떼를 겪은 고참 소방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지켜주고픈 맘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