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Mar 20. 2024

불을 끄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3)

(사진-카카오 맵 캡처)


지난주 토요일에는 아주 제대로 불을 껐다. 요즘 화재가 좀 뜸하나(?) 싶었는데 그날 우리 관내에서 화재가 난 것이었다. 위 사진에서 보면 정면에 있는 골목길을 올라가 약간 붉은 1층 집 뒤에 있는 연두색 톤(?)의 2층 주택이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C동 2층 주택 화재, 신고 계속 접수됨!, 신속 출동!

저녁 7시쯤 됐을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상황요원의 긴박한 목소리는 이 화재가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 신고가 계속된다는 말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알 정도로 화재가 크게 났다는 것을 말하고 우리 관내인 C동에서 났다는 건 우리 분대가 거기에 1착으로 도착해서 화재가 난 건물로 제일 먼저 진입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소방차에 탑승해서 무전을 들으며 소방복을 입었다. 우리가 타자마자 소방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소방차 안에서 공기호흡기를 차고 헬멧을 쓰면서 무전을 계속 들어보았다. 긴박한 상황요원의 목소리는 불꽃이 외부로 분출 중이며 계속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소방차가 골목길을 달려가다가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마을버스와 마주치고 말았다. 차 두대가 교행이 어려운 일 차선 도로인데 설상가상으로 골목길 한편에는 화물차가 떡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옆은 마을버스가, 앞은 화물차가 막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차를 뺄 생각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을버스 기사에게 뒤로 빼달라고 소리쳤다. 사이렌이 울리는 소방차를 보고도 비켜서지 않고 계속 들어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은 마을버스와 좁은 일 차선 도로에 맘대로 불법 주정차를 한 화물차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을버스가 겨우겨우 후진을 해서 차를 빼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2분이었지만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진에서 보이는 2층건물은 말 그대로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불꽃과 연기가 외부로 분출되어 금방이라도 이웃집으로 번질 기세였고 주위는 타는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는 골목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소방차에서 호스를 꺼내 화재가 나고 있는 2층집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왼쪽에 있는 초록색 천막옆 골목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근처에 있는 주민이 뛰어와서 이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이 낫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말한 골목으로 진입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주민의 말대로 이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이 옳았다. 천막 옆 골목으로 진입하면 좀 뺑 돌아가야 하고 집 뒤로 나오기 때문에 진입에 시간이 더 걸리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집 앞에 도착하자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밖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다행히도 대문은 열린 상태였다. 우리는 그 앞에서 공기호흡기의 면체를 썼다. 면체를 쓰면서 머릿끈을 잘 조이지 않으면 면체 사이로 유독가스가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머릿끈도 팽팽히 당겼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헬멧을 쓰고 버클을 잠갔다. 연기투시기(소방용 랜턴)를 켜고 화재가 난 건물로 진입했다. 진입하기 전에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서 건물  천장과 맞은편 벽을 향해 뿌렸다. 천장에서 타다 남은 목재나 철판이 떨어질 수도 있어 그런 것들을 먼저 떨어뜨려야 했고 불길이 활활 돌고 있는 건물 안의 온도를 좀 낮추려는 의도였다. 처음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뭔가 물컹! 하는 느낌이 들면서 발이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그것은 다 타서 스프링만 남은 침대 매트리스였다. 다행히 중심을 잡고 집 안을 돌아가며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집이 좁아서 그런지 천장에 뿌린 물이 그대로 내 머리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른 분대에서 쏘는 물에 몇 번 맞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뿌린 물은 금방 뜨거워져 잘못하면 뜨거워진 물이 목이나 옷 속으로 들어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헬멧의 물받이를 잘 펼치고 방화두건도 목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르게 뜨거움을 느끼지 않고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었다. 이글거리던 불을 어느 정도 끄고 보니 그 집은 빈집이었다. 재개발 지역에 남은 빈집으로 살림살이나 가구가 거의 없었다. 창문 한켠에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 깡통이 발견되었는데 누군가 빈집에 들어와 담배를 피우고 처리를 잘 안 해서 화재를 낸 모양이었다. 어쨌든 빈집이라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화재가 진압되고 난 뒤 건물 내부 모습, 천장에서 떨어진 목재가 매달려 있다.)


화재가 어느 정도 꺼지고 연기만 남게 되자 팀장님은 갈쿠리를 갖고 와서 잔화정리를 하라고 하셨다. 나와 최반장은 갈쿠리를 사용해서 타다가 남은 화재 잔여물을 뒤집어엎으면서 구석구석 물을 뿌렸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빠지지 않는 연기도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화상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이층과 일층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으나 높은 열기가 남아있는 곳은 없었다. 연기도 나지 않고 고온의 열기도 체크되지 않으면 일단 재발화의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완진'-화재가 완전히 진압됨- 보고를 한다. 그러면 일단 그 화재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화재가 마무리된 다음의 건물 외부 모습 -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지휘조사계장님의 완진 보고와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도 소방호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재 현장까지 펼쳤던 호스를 반대로 소방차에 정리해 넣는 것이다. 소방호스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용소방대 남성대 두 분께서 어디서 오셨는지 오셔서 도와주셨다. 한분은 차량 교통정리를 도와주기도 하셨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수고 많으셨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셨다. 우리도 검은 재가 묻은 헬멧을 벗으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웃었다. 의용소방대 남성대 총무님은 굳이 그 옆에 있는 '금호할인마트'에서 생수를 사 와서 우리에게 마시라고 주었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하며 소방차에 올랐다. 마음만 받겠다면서...


화재를 잘 진압하고 오는 길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안전센터에 돌아오면 화재 진압에 쓴 호스를 씻어서 호스 건조대에 걸고 새로운 호스를 소방차에 적재하고 압력이 빠진 공기호흡기 용기를 교체하고 소방복을 세탁소에 맡겨야 하고 면체와 헬멧도 닦아야 한다. 그리고 랜턴과 무전기의 배터리도 충전해야 한다. 하지만 출동할 때의 조바심과 비교하면 이건 뭐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몸이 지쳐있긴 하지만 마음이 편하니 아무 생각 없이 차례차례 순서대로 일이 진행된다. 같이 출동했던 구급대원들도 도와주니 금방 끝이 나서 우리는 자정이 되기 전에 같이 샤워를 하러 샤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샤워를 하며 생각해 보니 이번 화재는 출동 중에 마을버스와 마주치는 바람에 출동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어서 다행이었다. 화재 진압은 무리 없이 했지만 만약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출동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을 테고 그래서 혹시라도 인명피해가 있었으면 어쨌을까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 없이, 우리들도 무사하게 화재를 진압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계속 관내의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위해 순찰을 돌 수도 없는 일이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안전의식이 더욱 높아져서 언젠가 불법 주정차가 사라지고 소방차의 골든 타임을 위해서 항상 소방통로 확보가 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샤워를 마치고 지친 몸을 누이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전 06화 응급실 뺑뺑이(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