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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l 22. 2024

자살자 구조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60)

(사진 - 카카오맵 캡쳐)


요즘 윗지방은 비가 많이 와서 폭우로 몸살을 겪는 모양인데 내가 근무하는 아랫지방은 다행히도(?) 그다지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년보다 이맘때 폭우로 인한 구조출동은 많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소방관 생활이란 게 늘상 그렇듯이 이게 많이 없으면 다른 게 많이 있는 편이다.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고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 이어지면 자살 기도자의 수가 증가한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마철이 되면 자살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십여 년 동안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사실이다.  아마 장마철엔 태양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어져 두뇌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들어 그렇지 않나 싶다. 며칠 전에도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리려는 여자를 구조한 소방관이 있었다.


https://youtu.be/pE0Uy2i4d40?si=618wQWCM5qU1Ecn3


우리도 얼마 전, 뉴스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살의심자(?)를 구조한 적이 있었다. 제일 위에 있는 사진에 나온 곳에서였다. 시간은 저녁 11시쯤이었던 것 같다. 저 장소는 부산 영도에서 북항대교로 올라가는 진입도로인데 지상에서부터 둥글게 공중으로 한 바퀴 빙 돌아서 부산 남구로 연결되는 북항대교와 합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저 도로는 사람은 물론이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도 갈 수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인데 누군가 그 시간에 저기를 걸어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었다. 물론 처음 신고는 112를 통해서 되었지만 우리도 공동대응 요청건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낮에 찍어서 사방이 다 환하지만 저녁 11시의 저곳은 암흑천지에다 선박에서 보이는 몇 개의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지곳의 높이는 족히 50미터는 넘는 데다 만약 저기서 떨어지면 오른쪽은 캠핑장, 왼쪽은 부산 바다로 떨어지게 된다. 거기다 장마철의 안개가 자욱해서 그야말로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날 저녁엔 저 도로엔 지나가는 차들도 몇 대 없었다.- 나는 저곳을 누군가 걸어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혹시 유령이 아닐까?'는 생각도 잠시 해 봤었다.


그런데 소방차를 타고 가까이 가 보니, 정말 저 도로를, 지상에서 높이가 50미터는 족히 넘을 저 어두컴컴한 곳을 걸어가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그는 장마철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검은 점퍼와 바지를 입은 상태였고, 고개를 푹 숙이고 허리까지 구부정한 모습으로 저 도로를 걷고 있었다.


소방차가 멈추자 나와 최반장이 먼저 내려 그에게로 뛰어갔다. 우리가 가까이 가도 그는 무슨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우리가 온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는 그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세요?"


그는 우리를 보더니 마치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눈을 떴다. 이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를 깨달은 느낌이었다.


"여긴 위험합니다, 어디 가시려고요?"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왠지 저 아래로 가고 싶다는 눈빛이 그의 눈에서 드러나 보였다. 나는 다리 난간으로 가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잘못하다간 이 사람이 여기서 뛰어내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우리 옆으로 커다란 컨테이너 차량이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한 바닷바람도 불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일단 그의 어깨를 잡았다. 최반장은 그의 팔짱을 꼈다. 그러자 그는 포기했다는 듯, 그의 입에선 어눌한 말이 새어 나왔다.


"집에 가려고요~"


"네? 집이 어디신데요?"


"C동이요."


그의 말을 듣자 우리 입에선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가려고 한, 그의 집이 있다는 C동은 여기서 반대방향인 영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항 대교로 올라가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지 않는 한, (물론 그렇게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북항 대교를 건너 새벽녘엔 자신의 집과 부산 반대방향인 남구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르신, 이길로 가면 안 됩니다!, 그리로 갈 수도 없구요, 여길 걸어가는 것도 너무 위험해요!"


우리는 그가 이제야 점점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 진실을 말해 주었다. 치매 노인인지 아니면 노숙자인지, 자살 기도자인지 정확히 분간은 안되었지만 그를 이곳에서 멀리, 지상으로 떼어놓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를 데리고 일단 소방차로 가려는데 저 아래에서 경찰차가 푸른색 경광등을 켜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거기서 경찰관 두 명이 내리더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우리는 경찰관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그를 귀가조치 시키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를 경찰에 인계하고 다시 소방차로 돌아왔다.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이네요, 이 시간에 차에 치이거나, 다리 밑으로 떨어지면 어떡할려구..."


최반장이 소방차에 타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나마 사고 나기 전에 잘 처리해서 다행이야."


나도 그렇게 말하며 소방차 뒷좌석에 앉았다. 히뿌연 안갯속으로 검푸르게 파도치는 부산 앞바다가 보였다. 잠시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노인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았다. 그는 도대체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올라왔는지 몰라도 한 사람 집에 잘 보내드렸다고 생각합시다."


앞 좌석에 탄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소방차에서 빛나는 붉은 경광등이 검푸른 부산 앞바다를 등대불처럼 불그스름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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