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63)
요즘 응급실 뻉뺑이 이슈가 뉴스를 뒤덮고 있다. 고열과 경련을 일으킨 2살 여야가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해 의식불명에 빠졌나 하면 충북 청주에서 탈장 증세를 보인 4개월 영아는 3시간 만에 130km 떨어진 서울에서 겨우 수술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일 광주에서는 오전 7시 32분쯤 조선대 교정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된 여대생이 직선거리로 100m가량인 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지 못하고 대신 인접한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느라 시간을 지체해 중태에 빠졌다. 또 지난 2일에는 부산 기장군의 한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70대 근로자가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4시간 동안 뺑뺑이를 돌다 사망했다.
이렇게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은 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말기 신장병으로 일주일에 세 번이나 신장 투석을 받으시는 엄니가 계시고, 또한 올해 고3인 첫째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고 계시는 엄니는 언제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응급환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엄니를 이송할 병원이 없다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대 증원 문제로 극한의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정부와 의협의 틈바구니 속에서 올해 고 3인 첫째의 수시 대학 원서를 쓰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의대 증원이 인생의 기회라며 치고 들어온 N수생들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첫째의 성적으로 의대는 무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영향으로 인해 그보다 낮은 점수대의 고3 아이들이 극심한 눈치작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미노 현상으로 그 아래, 그 아래, 또 그 아래에 있는 점수대의 아이들도 따라서 눈치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제 수시 원서를 쓴 첫째도 그런 극한 눈치작전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세상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남미의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킨 날갯짓이 테평양에 거대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일명 '나비효과'로 나타나는 것일까? -하기야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응급실 뻉뺑이 심화는 나비처럼 그렇게 작은 날갯짓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한민국의 '의료 붕괴', '응급실 마비', '환자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태평양의 토네이도에 비견될 만하다.-
또한 소방관인 나의 입장으로 보면 구급대의 어려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위의 뉴스들은 아마 빙산의 일각일 테고 일선 구급대원의 입장에서 생명에 긴급을 요하는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이리저리 전화기를 돌려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보나 마나 '수용 불가'라고 한다면 정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다 못해 타들어갈 것이다. 동부산 기장의 한 공사현장에서 추락한 70대 환자를 태우고 50km가 넘는 서부산의 고신대 병원까지 이송한 구급대원은 그 1시간 10분 내내 차 안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도 수술이 안 돼서 사고발생 4시간 후에 결국 그 환자는 숨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고만 있노라니 정치권과 의료인들 간에는 뭐가 문제길래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렇게 기싸움을 펼치는지 정말 궁금한 생각이 든다. 서로 간에 조금씩만 양보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아무도 그 조금씩을 양보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정부는 정부대로 할 말이 많다. 이번 기회에 의료개혁을 이루어 더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가도록 의사들이 기득권을 좀 더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료인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급박하게 2000명 증원이라는 강수를 던지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으며 의료현장에서 교육과정상 2025년 2000명 증원은 절대로 안된다며 의료 파업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고 한다. 마치 두 마리의 여우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뱅뱅 돌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그걸 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제 그만 뱅뱅이를 돌고 이제는 국민들을 위해서 응급실을, 그리고 의료 서비스를 정상으로 되돌려 놔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뱅뱅이는 여간해서는 끝날 것 같지 않다.
다가오는 추석도 큰일이다. 추석에는 외래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모두 응급실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그 응급실이 붕괴 직전이니, 추석 음식 먹고 체한 것 정도라면 소화제나 먹어야지 하면서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만약 생명에 급박한 위기를 맞는다면 도대체 추석 연휴에 어디까지 응급실 뺑뺑이를 돌아야 한단 말인가?
부산 기장에서 송도까지 생명이 급박한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마음을 졸이며 달렸을 구급대원을 생각하니 한 십오 년 전쯤 나 역시 그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마 강서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지 싶다. 강서구는 부산의 큰 공장들이 모여있는 곳인데 그때 우리가 출동한 곳은 와이어로프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제법 두꺼운 철사로 와이어로프를 만들어 커다란 둥근 홈통에 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저런 두꺼운 와이어 로프는 사람의 힘으로 제대로 감을 수가 없다. 그래서 와이어가 생산되어 나오는 대로 그것을 감는 기계로 엄청난 압력으로 당겨서 감고 있었는데 실수로 그 작업자 중 누군가의 다리가 저 와이어로프 감는데 끼어 들어가 버렸던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구조대가 먼저 와서 기계를 세우고 와이어에 끼인 작업자의 다리를 겨우 빼냈을 때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시간이 흘러서였는지 이미 그의 허벅지 부분은 와이어에 감겨 아예 잘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환자를 인수받았을 때는 그와 그의 잘린 오른쪽 다리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 절단 환자들은 일단 접합수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이송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니 지혈등 응급처치는 차 안에서 하기로 하고 일단 그와 그의 다리를 구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당시 수지접합 수술 전문병원이었던 사상구의 C병원이 목적지였다. 거기까지 가는데 시간은 최대 30분,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조직에 괴사가 일어나 접합수술이 어려워질지도 몰랐다.
그는 잘려진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보고 처음에는 울었다. 말처럼 커다란 사내의 허벅지가 구급차 한쪽에 놓여진 채, 피를 흘리고 있고 구급차 침대 위에선 말처럼 커다란 사내가 말처럼 커다란 눈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그의 잘려진 다리를 어떻게 해서든 지혈을 하고 부목으로 고정해서 대량 출혈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거즈와 압박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그는 길길이 날뛰며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다시 붙여달라고 내게 애원하며 울었다. 하지만 난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잘려진 오른쪽 다리에 지혈을 계속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잘려진 다리에 혈관이 수축하면서 더 이상 많은 출혈은 나오지 않았고 나와 있던 출혈도 응고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의 출혈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정말 인체의 신비로운 회복능력 중의 하나였다. 계속 넙적다리 혈관에서 대량출혈이 발생했다면 사내의 생명에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겨우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말라갔다. 자신의 다리를 붙여 달라고 내게 고함을 지르던 사내는 이제 포기했는지 자신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내려다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담배를 한대 붙여달라고 말했다. 그 말의 뉘앙스가 마치 이제 그만 자신을 죽여달라는 뉘앙스로 들렸기 때문에 나도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그 사내에게 진통제를 놓아주고 싶었지만 그 당시 난 2급 응급구조사였기 때문에 혈관주사를 놓을 수가 없었다. -진통제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업무범위는 1급 응급구조사나 간호사로 국한된다.- 그래서 대신 사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정신도 되찾고 통증도 줄어든 것 같아 내가 직접 담배를 찾아 불을 붙여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구급차 안에서 환자의 흡연을 허락한 것은 10여 년간의 내 구급대원 생활 중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마지막 연민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두 동강난 자신의 허벅지 아래 부분을 지켜보았다. 그 고깃덩이 역시 이제는 출혈이 줄어들고 혈관이 수축되면서 시퍼런 빛을 띠고 있었다. 물론 구급차 바닥은 벌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생체징후를 계속 체크하며 병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구급차가 병원에 닿자 나는 구급차 운전원과 함께 그 사내를 응급실로 옮겼다. 그리고 말의 허벅지 같은 그 사내의 허벅지를 침대 시트로 감싸서 응급실로 옮겨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잘렸을 때는 비닐팩에 얼음을 직접 닿지 않게, 같이 넣어서 이송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허벅다리가 들어갈 만큼 큰 비닐 팩도, 얼음도 구급차 안에는 없었다.-
그 후에 그 사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가 대량 출혈로 결국 사망했는지, 아니면 접합수술에 성공해서 비록 완전히 정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상인과 가깝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접합수술이 잘 안 돼 의족을 차고 생활하고 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다리가 잘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후에 정확한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병원이 늘상 가던 우리 안전센터 부근의 병원이 아니라 좀 떨어진 곳이어서 수시로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급차 안에서 자신의 다리를 붙여달라고 외치던, 나중에는 자신의통증과 출혈과 함께 눈물도 줄어들어 그저 한대의 담배연기로 자신의 슬픔을 다스리던 그가 가끔 생각날 뿐이다. 나 역시 그 구급차 안에서 굉장한 PTSD (심적 외상 후의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다리를 붙여달라는, 그게 아니면 아예 죽여달라는 그의 고함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PTSD였다. 그리고 구급차 안에 놓여진 그의 시퍼런 오른쪽 허벅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동부산 기장에서 서부산 송도까지 추락한 70대 노동자를 태우고 구급차 안에서 그를 살려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을 그 구급대원은 어땠을까?, 그리고 4시간 후에, 자신의 구급차 안에서 싸늘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 환자를 생각하면 그때의 나만큼이나 엄청난 PTSD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의 의료대란이 계속 이렇게 간다면 십여 년 전 나와 같은 구급대원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명이 급박한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눈앞에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거절할 게 뻔한 병원에 전화기나 돌리는 구급대원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현 정부에 대한 분노? 의사들에 대한 원망? 오히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더 많은 자괴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십여 년 전 나처럼 몇 년 동안이나 그 사건에 대한 PTSD에 빠져 살겠지.
신장투석을 하는 엄니나 수능 원서를 쓰는 첫째도 문제지만 그런 후배 구급대원들을 생각하면 어서 빨리 정부와 의료인들의 대립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이 응급실 뺑뺑이가 사라져야 한다. 물론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정부와 의료인들이 국민과 구급대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금씩 더 양보하고 협의해 나간다면 응급실에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구급차 뺑뺑이는 좀 더 줄어들지 않을까?
정말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일인지 정부나 의료인들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은 우리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사람들이고, 또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까지 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서로의 입장만을 내 세우며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다면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자신들의 입장을 조금씩만 양보해서 오직 국민을 위해서, 환자를 위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국민들이 보고 있다. 어서 빨리 합의를 이루어 이번 추석이 지나면 모든 국민들이 안전하게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가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되기를 저 보름달을 보며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