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1)
(대문사진 - kbs 뉴스 캡처)
한 달 전쯤, 부산에서는 또다시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숨진 여성이 있었다. 숨진 여성이 다니던 스포츠 센터와 처음 옮겨진 대학병원은 한때 나도 숱하게 다닌 일명 '나의 나와바리'여서 그곳 지리는 훤하게 꿰고 있다.
https://youtu.be/l_Bbr7RsNCo?si=WLDglvlSB43Uk4sk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을 하다 갑자기 쓰러진 60대 여성,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연히 바로 위에 있는 대학병원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 내가 그 구급대원이라도 그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을 것이다. 그런데 4분 만에 그 대학병원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수용거부를 당한다. 병원 측에 따르면 심정지 환자를 받으려면 최소한 3명의 의료진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엔 당직의사 1명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영도의 한 병원으로 재이송을 했는데 그 시간이 25분이나 걸리다 보니 환자는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총 29분이라...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을 훌쩍 넘기고도 남을 그 시간에 구급대원은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송 후에도 PTSD가 오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잠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지금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구급대원이 잘못한 건 또 뭐란 말인가? 구급대원은 매뉴얼대로 심정지 환자를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병원에선 애초에 의료진 부족이라든가 장비 부족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소방 상황실에 통보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심정지 환자를 데리고 간다고 전화를 하고 그곳으로 출발했을 뿐인데 병원 응급실 앞에서 그런 문전박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25분에 걸쳐 영도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겼는데 골든 타임을 훌쩍 넘기다 보니 심정지 환자는 결국 사망한 것이다.
https://youtu.be/zvduPurd93o?si=P3FI_TmAQZnH-idm
그래서 이런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소방청과 병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개선책이 그로부터 며칠 후에 보도되었다. 구급대원이나 응급구조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서 시스템에 입력하면 AI가 그 환자의 상태를 분석해서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병원을 선정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그런 병원이 없으면 의사가 동승하는 닥터 헬기등을 동원해서라도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도 이송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송 체개 개선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도 잠시,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바로 의대 증원 문제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대규모로 병원을 빠져나간 것이다. 안 그래도 의사가 없어서 응급환자를 받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가 사망자가 생기는 마당에 이렇게 의사들이 대규모로 병원을 빠져나가 버리면 그 의료공백은 어떻게 메워야 할까? 군 병원이 나서고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해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수술과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환자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부와 의사협회가 강대강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인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이런 파워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전직(?) 구급대원으로서 참으로 마음이 좋지 않다.
옛날 내 교회 친구 중에 닥터(?)가 된 친구 하나가 있었다. 우연히도(?) 이번에 응급실 뺑뻉이로 문제가 된 대학병원 의대 출신인데 둥글넙적(?)한 그 친구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친구였다. 의사라기보단 뭔가 편한 동네 형처럼 마냥 기대고 싶은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는 방학 때마다 의료봉사 등을 다니며 낮은 곳에서 아픈 사람들을 돕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닥터가 되고 한 10년쯤 지나서 아프리카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인전에 나오는 슈바이처 박사처럼 인류애(?)를 실천하고 싶어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자신의 평생을 걸고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갸륵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이제야 좀 누릴 수 있게 된 이 사회를 떠나서 그런 오지로 간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내가 속물이어서 그렇겠지만...- 하지만 원래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길 좋아하는 그 친구의 성향을 알고 있으니 말릴 수는 없었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긴 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내 머릿속엔 그 친구에 대한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의 소식은 듣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응급실 뺑뺑이 뉴스가 나오면 그 친구를 떠올리곤 하는데 그 친구 특유의 친화력을 생각하면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흑인들과 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그 친구의 건치미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웃으며 호형호제(?)하며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또한 그 친구 말고도 이태석 신부라는 유명하신(?) 분도 우리 동네 출신이다. 부산의 가장 못 사는 동네, 아미동과 남부민동, 감천 송도, 이런 곳 출신 의사들이 자기보다 더 못 사는 아프리카 오지에 흑인들을 위해 봉사하러 갔던 것이다. 왜 그럴까? 자기들이 어릴 때 가난한 설움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된 그 대학병원도 고. 장기려 박사님이라는 분이 6.25 전쟁 이후에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한 병원이 아니던가, 그런 병원에서 이런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정말 아쉬울 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 있던 그런 진정한 의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술을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쓰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그들을 위해 인술을 실천했던 참의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의사가 되기 전에 꼭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번 읽어보았다. 나하고는 관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에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시대를 거치면서 2017년에 '제네바 선언'으로 개정되었는데 그 여섯 번째 문구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연령, 질병이나 장애, 신념, 민족, 젠더, 국적, 정치적 성향, 인종, 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또는 다른 어떤 사실도 환자를 대하는 나의 의무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은 의사가 되기 전에 모두 자신이 환자를 대하는 의무에 있어서 그 어떤 정치적인 것이나 경제적인 것들도 개입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서를 했다. 그런데 이런 서약을 하고서 병원을 떠나는 것은 환자의 대한 자신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이 아닐까?
오늘밤, 6.25 이후에 피난민들의 아픔을 보듬었던 고. 장기려 박사님과 자신의 영달과 안위는 접어두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술로 의료봉사를 펼치다 돌아가신 고. 이태석 신부님, 그리고 지금은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내 오랜 친구가 너무 그립다. 그런 진짜 의사들이 하나둘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오늘, 나는 내 옛 친구를 기억하며 이 노래를 듣고 싶다. 무엇이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이 옛 노래를 들으며 오늘밤은 그 친구를 그리워하고 싶다.
https://youtu.be/vgu7lVatx0Y?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