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Feb 20. 2024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3)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0)

(대문사진 - 우리 집 피난대피도 예시(출처-국민재난 안전포털))


지난주에는 우리 관내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화재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었다. 저녁 11시 반쯤이었다. 신고자는 아파트 6층에 사는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서 신고를 했다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계속 아파트 화재가 연달아 발생해 인명피해가 났기 때문에 우리 관내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하고 긴장 속에서 소방차에 올랐다. 


그 아파트는 산만디 고바우(?)에 있었지만 진입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주민들의 차들이 주차선에 맞게 잘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고자가 있는 동 바로 앞에 소방차를 세울 수가 있었다. 우리 분대와 비슷하게 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들이 신고가 들어온 104동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분대원들은 먼저 동 외부에 있는 경비실에 가서 수신반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화재가 나면 감지기가 연기나 온도를 감지해서 수신반에 신호를 주게 되고 그 수신반을 보면 어디서 화재가 났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외부로 연기나 불꽃 등의 분출이 없다면 수신반을 확인하는 것이 화재가 난 지점을 찾는 좋은 방법이다. 


https://brunch.co.kr/@muyal/154


그런데 경비실에는 자탐 수신기가 없었다. 관리실에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시 104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신고자가 있는 6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거기가 아니고 114동이에요!"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경비실에 없었던 경비원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14동에서 타는 냄새가 가장 많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114동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114동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 114동은 104동 뒤에 있었다. 그러니까 114동에서 나는 냄새를 그 앞동 주민인 104동 6층의 신고자가 맡은 것이었다. 총 14층인 114동을 14층부터 8층까지는 우리가, 7층부터 1층까지는 구조대 대원들이 검색하기로 하고 우리는 14층부터 내려오면서 각 호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와 팀장님은 각 호실의 문을 두드리면서 일일이 문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10층까지 검색하고 있을 때 무전기에선 이런 무전이 흘러나왔다. 


"401호에서 음식물 가열 발견, C분대를 비롯한 전분대 철수!"


구조대에서 401호에서 음식물 가열된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관할분대인 우리 분대만 남고 다른 분대는 모두 철수하라는 무전이 내려온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401호로 갔다. 문이 열려있는 그 집에서는 70대로 보이는 영감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었다. 


"내가 곰국을 끓여놓고 깜박 잠이 들었나 보네, 이렇게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나마 이웃집에 코가 좋은(?) 사람이 그 시간에 깨어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음식물을 가열한 불꽃은 그 솥단지를 태워버리고 주방 벽면을 타고 올라 천장을 장악하고 나중에는 그 집안을 모조리 살라먹고도 모자라 104동의 모든 생명을 위협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항상 조심하셔야죠, 영감님, 요새 아파트 화재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


나도 이렇게 그 영감님에게 한소리(?) 해 주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꿀꺽 삼켰다.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아파트 화재도 이렇게 시작은 아주 조그만 불씨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의 특성상 내가 아무리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내 집의 화재예방을 완벽히 한다고 하더라도 이웃집에 사는 누군가의 고의 혹은 실수로 우리 집의 안전이 담보될 수 없다. 그러기에 나의 조그만 실수가 어쩌면 같이 생활하는 이웃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화재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계속된 아파트 화재에 인명피해가 늘어가자 소방청에서는 얼마 전 화재 시 피난 매뉴얼을 개선, 정리해서 발표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불이 나면 대피!'라는 무조건적인 한 가지 피난 매뉴얼에서 벗어나 화재 상황에 맞게 개선책을 내놓은 것 같아 아주 좋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방청에서 내놓은 아파트 화재시 피난행동요령 메뉴얼)


친절하게도 그림으로 그려 자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처음 보면 좀 복잡하기도 할 것 같다. 예전 매뉴얼과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번 매뉴얼에는 화재가 나면 '피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전에는 불이 나면 일단 물수건으로 코를 막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으로! 낮은 자세로 지상으로 대피하라고 했었는데 그러다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내가 전편에서 언급한 대로 화재시 계단이 굴뚝 역할을 해서 연기가 모두 그곳으로 모여 올라가는데 그걸 모르고 계단으로 피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muyal/152


그래서 이번에 바뀐 내용은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정리해 보면


1-1) 자기 집에 불이 나서 계단으로 대피할 수 있는 경우 - 첫째. 소화기로 초기진화를 시도한다.

                                                                    둘째. 초기진화에 실패하면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대피

                                                              

1-2) 자기 집에 불이 나서 계단으로 대피할 없는 경우 - 첫째. 피난기구를 활용해 옆집이나 지상으로 대피

                                                            둘째. 피난기구를 활용할 수 없다면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린다.


2-1) 다른 집에서 불이 나서 화염과 연기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경우 - 첫째. 계단으로 대피를 시도한다.

                                                둘째. 계단으로 대피할 수 없다면 집안에서 피난기구를 활용해 대피한다.

                                                            셋째. 피난기구를 활용할 수 없다면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린다.


2-2) 다른 집에서 불이 나서 화염과 연기가 우리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 - 대피하지 말고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린다.


중요하게 바뀐 점은 2-2번인데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연기나 화염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굳이 계단을 통해 대피할 필요 없이 자기 집에서 문을 닫고(아파트의 문은 대부분 방화문이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소방관이 오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물수건으로 틈을 막은 채 구조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아파트 화재에서 피난하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 예전의 피난매뉴얼에 따라 굳이 계단을 통해 피난하다 안타까운 생명을 잃는 일이 벌어져서 이렇게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남의 집에서 화재가 났지만 자기 집으로 연기나 불꽃이 들어온다면 먼저 계단으로 대피를 해야 하고 연기나 화염으로 계단으로 대피가 어렵다면 자기집에 있는 피난기구(완강기, 경량 칸막이, 하향식 피난사다리, 대피공간 등)의 위치와 사용법을 숙지했다가 그것을 통해서 탈출하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출입구와 가장 먼 방으로 가서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이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피난 계획을 세우고 피난시설의 위치와 이용법을 알아두고 피난시 만남의 장소등을 지정해 두는 것도 좋다.(이 모든 것을 위 대문사진에서 보듯 피난대피도에 작성해서 가족들과 의논하면 금상첨화다.)


마지막으로 자기 집에서 화재가 났을 때인데 이럴 때는 일단 소화기로 초기진화를 시도해야 하고 만약 실패한다면 아래층으로 피난해야 하고 피난이 어렵다면 위와 같이 자기 집에 있는 피난기구를 활용해서 탈출을 시도하거나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 네가지 상황에서 대피시에는 무조건 불이 난 쪽의 문을 닫고 대피하는 것이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대피와 구조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니 이것도 꼭 숙지해야 하겠다.


이렇게 4가지 상황에 맞게 온 국민이 피난요령을 숙지하여 화재시에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재가 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 모두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안전을 책임지는 책임자라고 생각하고 화재 예방에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그렇게 해서 소방관으로서, 또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올해에는 더 이상의 아파트 화재뉴스와 인명피해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전 10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