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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Feb 01. 2024

젊은 소방관의 슬픔(3)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9)

(대문 사진 - 뉴시스)


오늘은 새로운 센터로 옮겨간 후 첫 출동이 있었다.-나는 인사이동으로 1월 24일부로 C 119 안전센터로 옮겨왔고 어제는 거기서의  3번째 당번일이었다- 새벽 3시쯤 됐을까, 대기실 스피커에선 


대형화재!, 대형화재!, 남항시장 내 화재발생!


라고 방송이 울렸다. 우리는 얼른 소방차에 올라타서 방화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항시장이라면 우리 안전센터에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관할인 Y안전센터가 더 가까이 있긴 하지만 우리도 거리상 2착-화재가 난 목표물에 두 번째로 도착하는 분대-분대이기 때문에 임무가 막중했다. 보통 1착인 선착대가 화점 진압을 위해 호스를 연장해서 들어가면 2착대는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요구조자를 구조하거나 선착대와 반대방향에서 호스를 연장하고 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재가 나면 늘 그렇듯이 시장 입구는 많은 차들로 막혀있었다. 시장 어디쯤에서 불이 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소방호스를 많이 메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100미터쯤 걸어가자 Y안전센터의 대원들이 보였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우리의 임무를 지시받았다. Y안전센터 대원들은 불이 난 곳으로 진입하기 위해 한 가게 셔터를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붉게 이글거리는 불이 보였다. 우리에겐 그 위층에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검색, 구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가게 2층은 주택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공기호흡기를 착장하고 호스는 옆 가게에 놔둔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이층으로 올라가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 위에는 사람 없어요, 아까 다 나왔어요!"


그래도 우리는 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시 가게 입구로 갔다. Y안전센터 대원들이 셔터를 열고 그 안으로 물을 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도와 같이 화재진압을 했다. 방송에서는 시장의 대형화재라고 했지만 실상은 시장 안의 가게 하나에 불이 난 것이었고 그것도 금방 꺼져 연기만 자욱했다. 다행이었다. 인사이동을 하면 이른바 '신고식'이라고 해서 대형화재가 한번 난다는 소방관들의 속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쉽게 넘어간 듯했다. 


"관할분대인 Y분대 외에 다른 분대는 철수!"


무전기에서는 상황요원의 무전이 흘러나왔다. 분대란 한 센터의 대원들과 장비들을 말한다. 그 무전을 듣고 팀장님을 비롯한 우리 분대원은 전개했던 호스를 모두 소방차에 다시 싣고 우리 안전센터로 무사히 귀소했다. 나는 안전센터에 돌아와 분대원들과 함께 호스를 다시 정리해 소방차에 실었다. 그리고 공기호흡기 공병을 갈고-공기호흡기를 좀 많이 쓰면 압력이 빠지기 때문에 다음 출동을 위해 공병을 교체해야 한다.- 샤워를 하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의 출동도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생각하고 대기실에서 쉬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침이 되자- 난 인터넷에서 또 두 사람의 소방관이 순직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문경소방서의 젊은 소방관 두 명이 내가 불을 끄던 그 시간에 똑같이 불을 끄다 순직했던 것이다. 


https://tv.kakao.com/v/444331812


오전 1시와 오전 4시, 그들은 싸늘한 죽음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무사히 화재진압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그 시간대에 말이다! 그들 역시 공장 3층에 있을지 모르는 요구자를 구조하기 위해 진입했다. 그러나 갑자기 세진 불길에 고립됐고 건물이 붕괴되면서 누군지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형체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육가공 공장의 소방대원 발견위치 측면도)


화재가 발생한 공장은 육가공 공장이었다. 돈가스 생산공장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돈가스를 튀기기 위한 기름등 위험물이 산재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기름등에 불이 붙는다면? 그 즉시 폭발하거나 연소확대된다. 화재현장이란 게 그렇다. 특히 공장은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두운 데다 연기 때문에 화재 현장에선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부산의 대표적 공장 지대인 부산 사상소방서에 있을 때 공장 화재에 많이 출동해 봤지만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얼 만드는 공장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진입할 때가 많았다. 한번은 도금공장에 화재가 나서 출동했는데(그 공장이 도금공장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불을 끄다가 보니 발이 뭔가 뜨뜻해져 와서 얼른 발을 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도금을 하기 위한 황산, 질산등이 담긴 수조였다. 물인 줄만 알고 들어갔는데 센터에 들어와 보니 내가 신은 방수화가 반쯤 녹아 있었다. 자칫했으면 발도 아마 그렇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공장을 짓는 재료인 샌드위치 패널은 그 자체로 연소확대가 되기 쉽다. 그 안에 있는 보온재료인 스티로폼이나 글라스 울 등이 타면서 급격하게 화세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면서 밖을 감싸고 있던 철판은 순식간에 녹아서 무너져 내린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소방관들도 같이 추락, 또는 압사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십여 년 전에 내 첫 소방 스승이셨던 고 김영식 소방관님이 순직한 이유이기도 하고, 또 그 후로 계속 반복되는 공장과 물류창고 화재의 공통된 소방관 순직 요인이기도 하다.


https://news.v.daum.net/v/20120802134714450


오늘 새벽엔 이렇게 위험한 화재현장에 또 두 사람의 젊은 소방관이 들어갔다. 문경소방서 119 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 소방교(27)와 박수훈 소방사(35)였다. 그들 역시 그 공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또 그 공장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게 될 줄 알지 못하고 진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그 모든 일은 도미노처럼 차곡차곡 예정된 시나리오처럼 일어났다. 어디선가 난 불은 처음에는 약한 연기만 피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요구조자가 있을 거라는 신고자에 말에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3층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샌드위치 패널 안으로 들어간 불씨가 금방 연소확대되어 철골로 된 그 공장을 쓰러뜨리는 데는 얼마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곳곳에 방치된 기름등에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삽시간에 화재는 커졌고 그들은 커진 불길에 고립되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공장을 떠받치고 있던 철골이 힘없이 불길에 녹아 스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그들은 동료들조차 누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순직한 소방관들의 마지막 모습)


나 역시 새벽에 그 화재현장에서 화세가 좀 더 컸더라면, 그 아주머니가 위에 누군가 있다는 말을 했더라면, 또 그 가게 안에 어떤 위험물이나 유류가 있었더라면 나도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섬뜩한 말이지만 소방관들의 일이란 이렇게나 위험하다. 하룻밤 사이에 생사가 갈릴 정도로... 


하지만 이것을 그저 운명이라거나, 재수라거나, 그런 것들로 치부해 버리기엔 젊은 두 사람의 생명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한명의 소방관은 '소방과 결혼했다'며 소방을 천직으로 여겼으며 나머지 한명은 어려운 인명구조사 시험을 쳐서 위험한 구조대 근무를 자원할 정도로 사명감이 큰 분이었다. 이렇게 덧없이 순직한 젊은 소방관들의 슬픔을 오늘 또 한번 절감한다. 그래서 계속 반복하는 말이지만 적어도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공장과 물류 창고 화재시에는 소방관들의 진입이 좀 더 신중하게 결정되기를 그들의 슬픔을 모아 탄원(歎願)한다.



경북 문경 육가공공장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하신 고.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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