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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an 23. 2024

울 엄니의 집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12)

울 엄니가 살고 있는 집은 30년이 넘은 아파트다. 30여 년 전, 내가 고3 때 거기로 이사 간 후 부모님은 거기서 쭉 사셨다. 내가 거기서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갔다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셋 둔 지금까지도 울 엄니는 거기서 계속 사시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누나는 울산으로 시집을 갔고 지금은 두 딸을 둔 아줌마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집에서 후두암을 얻어 6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동안 변하지 않고 그 집을 지키는 사람은 엄니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집에서 반평생(?)을 사셨다.


난 결혼을 하고 그 집을 떠났다. 처음 들어간 신혼집에서 지금까지 세 번이나 더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엄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고 싶었다. 그런데 엄니는 싫다고 하셨다.


"내가 니 아버지와 함께 한 이 집을 두고 어디를 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이 집에 투영되어 엄니가 집을 못 떠나시는 줄 알았다.  


엄니의 신장이 나빠져 처음으로 신장투석을 받아야 했을 때, 난 엄니에게 병원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로 옮기자고 했다. 거기라면 거리도 가까워 엄니 혼자서도 걸어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이 집을 떠나서 혼자서 살기가 무섭구나, 다른 곳에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니는 오후에 햇살이 좋은 이 집을 떠나기가 싫다고 하셨다. 늘 보아오던, 이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들이 보이지 않으면 왠지 불안할 것 같다고 하셨다. 실상은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이라곤 마주한 옹벽과 주차장 풍경 뿐인데도 말이다.


"거긴 여기보다 전망이 더 좋아요, 부산항이 한눈에 다 보이고요, 뒤로는 백양산이 사시사철 철 따라 보여요."


하지만 엄니는 내 말에 시큰둥했다.


"평생을 보고 산 이 풍경이 좋아,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보면 왠지 다시 이곳으로 오고 싶어질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엄니를 병원 근처의 신축 오피스텔로 옮기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내가 비번 날 엄니를 병원으로 모셔드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일요일에는 막둥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해서 마트에 데리고 갔다. 동생 같은 아기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해서 적당한 것을 골라 계산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에 갔을 때였다. 한창 왕돈가스를 썰고 있는데 엄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범아, 큰일 났다. 불이 나가서 안 들어온다!"


"네?, 뭐라구요?, 베란다 나가 보세요, 우리 집만 안 들어와요?, 아니면 아파트 전체가 다 안 들어와요?"


"응, 베란다 나가 보니, 아파트 전체가 안 들어오는구나, 그런데 바깥 가로등은 켜져 있고..."


"그럼 아파트 전체가 다 나갔나 보네요, 제가 가도 특별히 도움은 안될 거 같아요, 아파트 전체가 다 나갔다면..."


"그래, 지금 방송 나오는데 저녁 12시까지는 복구가 된다는구나, 기다려 보지 뭐..."


엄니는 그렇게 전화를 끊으셨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먹던 왕돈가스를 마저 먹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기도 전에 다시 엄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다시 방송이 나오는데 지금 변압기가 고장 났다고 수리한다고, 차단기(두꺼비집)를 내려놓으라는구나, 근데 난 그게 어딨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어두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네, 알겠어요, 제가 한번 가볼게요."


난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돈가스를 먹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내 통화를 엿듣던(?) 아내가 물었다.


"어머니 집에 불 나갔대요?, 불 나가면 가스도 안 들어올 텐데, 그럼 난방도 안 되는 거 아녜요?"


아내의 한마디가 내 이마를 때렸다. 불이 꺼진 거실에서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바닥에 혼자 앉아있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허리가 아프고 눈이 어두워서 두꺼비집은 고사하고 촛불도 찾을 수 없어 우두커니 앉아만 계실 어머니가...


(문제의 두꺼비 집~그런데 도대체 두꺼비란 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러게, 지금 좀 가봐야겠어."


내가 패딩 점퍼를 걸치고 일어서자, 같이 먹고 있던 막둥이와 첫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막둥이는 '아빠, 가지 마!'란 말을 눈으로 하고 있었고 첫째는 밥을 먹고 가려고 했던 카페가 생각 나는 모양이었다.


"얘들아, 할머니 집에 불이 나가서 지금 아빠가 가셔야 된단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집에 들어가자, 여보,  어머니 집에 보시고 정 안 되겠으면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일단 모시고 오세요, 둘째가 수련회 가서 지금 둘째 방이 비어 있으니 그 방에서 오늘은 주무시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아내의 한마디의 뚱했던 첫째의 표정과 울 것 같았던 막둥이의 표정이 일시에 교통정리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일단 집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엄니 집으로 향했다.


윗지방처럼 눈이 많이 온 것도,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것도 아닐 텐데 아파트 전기와 가스가 나갔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제의 변압기와 전봇대~부디 문제? 일으키지 말고 거기에 오래 서 있어 주렴~)


아파트 입구에선 한전 차량이 전봇대에 달린 변압기를 교체하느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차량이 아파트 입구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내 차를 몰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근처의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아파트로 들어가다 관리소장님을 만났다. 관리 소장님은 엄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오느라 자주 들러서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어이구, 아드님 또 오셨네요. 어머니 때문에 오셨죠?"


"네, 소장님, 전기는 언제 들어올까요?"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됩니다, 지금 한전에서 나와 작업하고 있으니..."


관리 소장님은 전봇대 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난 그분에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작동되고 있었다.


'딩동'


30년이 넘은 아파트지만 몇 년 전 손을 본 초인종과 디지털 도어록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느낀 것은 평소에 이 집을 들어설 때의 그 따스함이 아니었다. 썰렁하고 어두운 공기가 집 안을 휘감고 있었다.


(오후에 볕이 좋은 어머니 집 거실~)


'드르륵'


난 거실로 들어서는 중문 격인 미닫이 문을 열었다.


"아범 왔나?"


거실에 들어서면서 내가 본 것은 식당에서 내가 상상한 바로 그 이미지였다. 어두운 거실에서 엄니는 꺼진 tv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은 시간이 한 시간쯤 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알 수 없었다.


"너 안 부르려고 했는데 두꺼비집을 내리라기에 내가 겁도 나고, 어떡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왜 안 부르려고 했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만 생기면 불러대는 저를 정작 엄니는 왜 안 부르려는 거예요!'


내 맘속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어두워서 좋았다.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엄니가 보지 못했을 테니까... 추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엄니를 살며시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경상도 남자의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대신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변압기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전기가 다시 들어오니 각 세대에서는 내려놓은 차단기(두꺼비집)를 다시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두꺼비집을 내려놓지 않았던 우리 집은 '팟'하며 거실과 방에 불이 들어왔다. 밥솥과 정수기가 다시 켜지며 뭐라뭐라고 안내음성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아범아, 네가 오니까 모든 게 해결되는구나"


나는 눈이 부신 척, 옷소매로 눈가에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엄니, 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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