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간다는 것(16)
어제는 엄니의 대장 CT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요 몇 달 새 계속 설사를 하던 엄니는 병원 간호사에게 설사약을 달라고 했고 그렇게 몇 번을 설사약을 처방 받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계속 설사가 멎질 않자 간호사는 엄니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할머니, 꽤 오랫동안 설사를 하시는데 그럼 대변 색은 무슨 색깔이에요?"
"(엄니, 잠시 생각하다가)으응~잘 모르겠는데 도마도(?) 색이던가?"
"(간호사, 깜짝 놀라며)네?, 토마토요?, 그럼 가끔 검은색일 때도 있어요?"
"(엄니, 또 생각하다가) 그려, 가끔은 까만색이 나올 때도 있는 거 같애~"
"(간호사, 차트에 무언가를 적으며)음~큰일이네요~그럼 대장 CT를 찍어봐야 될 것 같애요, 조영제를 넣어서"
그렇게 해서 엄니는 대장 CT를 찍게 된 것이다. 의사가 우리에게 설명하기로 엄니가 계속 설사를 하고 토마토 색 변을 본다고 하니 혈변이 의심되고 그게 만약 혈변이라면 대장 쪽에 문제가(혹시 대장암?)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대장 CT사진을 조영제를 넣어서 찍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혹시라도 대장 쪽에 문제가 있다면, 그게 또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가 후두암으로 3년간이나 투병생활을 하시다 하늘로 떠나가는 것을 본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피 말리는 투병 과정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재는 신장투석을 하시면서 한쪽 귀에는 진주종을 갖고, 또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로, 몇 년 전엔 뇌경색을 앓으신 적이 있는데다 작년에 넘어지면서 얻은 척추 압박골절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엄니를 또 그렇게 항암치료며, 수술과 방사선치료로 이어지는 일련의 투병과정을 겪게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검사를 해 보자는 병원의 권유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일단 엄니의 상태를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비번이던 어제, 엄니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원무과에서 수납을 하고 CT검사실로 들어서는데 정말 지금이라도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CT로 검사를 해서 그 어떤 것(?)이 나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뭐 딱히 엄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치료를 한답시고 아버지가 했던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니에게 더 큰 고통을 줄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예약이 잡혔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엄니를 탈의실에 들여보내고 나서 보호자석에 앉았다. 엄니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난 엄니를 모시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여자 화장실로 갔다. 탈의실과 마찬가지로 여자화장실도 내가 따라 들어갈 순 없었다. 엄니를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기다리는데 또 왜 그렇게 안 나오시는지... CT실에서는 순서가 돼서 찾을 텐데...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엄니를 데리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말 무슨 일이 난 건 아닐까 하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엄니가 나왔다.
"왜 이렇게 중요한 순간마다 매번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어~"
엄니의 이런 한마디를 듣자 내 속의 화가 좀 잦아드는 느낌이었다. '엄니는 환자다, 엄니는 환자!' 이렇게 되뇌이며 엄니를 다시 CT검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검사실의 간호사는
"할머니, 어디 가셨었어요?, 주사 맞아야 하는데..."
라며 엄니의 오른팔을 잡아 올렸다. 조영제 주사를 엄니의 팔에 놓으려는 모양이었다. 엄니는 아무 말 없이 간호사 앞에 자신의 오른팔을 올렸다. 간호사는 엄니의 팔을 손가락으로 몇 번 탁탁거리더니
"혈관이 없네, 혈관이..."
라며 다른 쪽 팔을 올리라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엄니의 혈관을 찾아 두드리더니 드디어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엄니 팔에 찔렸다.
"아, 아야, 아이고, 아야~"
엄니의 입에선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마나 아팠던지 검사실 안의 모든 환자가 엄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걸 봐봐야 내 마음만 아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벽에 걸린 TV에서 나오는 YTN뉴스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투병할 때, 막둥이가 독감에 걸렸을 때, 혈관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해서 몇 번씩이나 찌르는 간호사들을 얼마나 많이 원망했던가, 하지만 그들을 원망한다고 뭐 하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 마음만 아프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간호사에게 이 검사 안 하겠다고 하며 엄니를 모시고 이 검사실을 떠날까 하는 마음만 들었다.
주삿바늘이 엄니의 팔을 몇 번이나 찌르더니 겨우 엄니의 비명(?)이 그쳤다. 이제야 혈관주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고무줄을 푸는 간호사의 모습이 보였다. 엄니는 팔이 아픈 데다 비명까지 질러 그런지 벌써 파김치처럼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좀 쉴 시간도 없이 다시 CT촬영실로 들어가야 했다. 둥근 통 안에 겨우 엄니가 눕는 것을 보고 난 나왔다.
"***환자 보호자 들어오세요~"
몇 분이 지나자 촬영이 끝났는지 촬영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둥근 통 속에서 나온 엄니는 몸을 일으킬 힘도 없어 내가 엄니의 몸을 일으켜야 했다. 엄니 다리를 아래로 내려 신발을 신겼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탈의실로 엄니를 들여보냈다. 올 때는 걸어서 왔지만 나갈 땐 휠체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휠체어를 빌려 왔다. 엄니가 탈의실에서 나오자 휠체어에 앉혔다. 엄니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오늘 대장 CT를 찍느라 아무것도 못먹었을 것이었다.
"엄니, 아침도 못 먹었지?, 뭐 먹으러 갈까?, 밖에 죽집에 가서 죽 먹을까?"
엄니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난 휠체어를 끌고 엄니와 둘이서 죽집으로 들어갔다.
"엄니, 무슨 죽 먹을까?, 전복죽? 야채죽?"
엄니는 야채죽을 먹겠다고 했다. 주사를 맞으면서 얼마나 용(?)을 썼던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엄니가 죽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아팠냐고 물어보자 엄니는
"갸(간호사)는 정말 초짜더라, 혈관을 못 찾아서 몇 번을 찔렀는지 모른다."
하면서 나에게 거즈에 싸인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내가 보기엔 그 검사실 간호사는 초짜는 아니었다. 엄니의 혈관이 너무 약했을 뿐... 하지만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걸 한 번에 못 찌르고..."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또 이비인후과 진료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엄니의 귀 안에 자라난(?) 진주종을 긁어내는 진료였다. 우리는 죽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이비인후과로 올라갔다.
"이비인후과 간호사는 친절하고 싹싹한데 의사가 좀 까칠하더라."
엄니는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게 이비인후과 의사를 디스했다.
"내가 요전 앞새 이비인후과가 2층인 줄 알고 내렸는데 3층이더라고, 그래서 한층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글쎄, 그 여자 의사가 내보고 늦게 왔다면서 화를 내더라, 오늘은 네가 가서 좀 뭐라 케라~"
'네?, 엄니?'
난 순간 당황했지만 알았다고 했다. 엄니가 요즘 나이가 드시더니 이런 엉뚱한 얘기를 자주 하신다. 날 뭐 이병원 병원장(?)쯤으로 생각하시나 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일단 대답은 그러겠다고 했다.
이비인후과에 올라가자 간호사가 우릴 맞았다.
"오늘을 일찍 오셨네요~아드님하고..."
우릴 보며 웃는 간호사의 모습이 친절하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 진료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 여자 의사는 우릴 본척만척하더니 날카로운 표정으로 바로 진료에 들어갔다. 엄니를 의자에 앉히더니 귀에 내시경을 넣어 살펴보았다.
"할머니, 움직이면 아플 수 있습니다."
라고 하더니 귀 속에 뭔가를 집어넣어 파내기 시작했다. 엄니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앗, 아야야, 아야~"
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여자 의사에게 왜 지난번 진료에서 엄니가 늦게 왔다고 화를 내었는지, 오늘은 왜 이렇게 아프게 하냐고 따질 수 없었다. 그래봐야 엄니에게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분을 그렇게 하더니 엄니는 진료실에서 나와서 내 자리 옆에 앉았다. 귀가 아픈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간호사가 따라 나오더니 앞으로 엄니는 두 달에 한 번씩 이비인후과에 오면 된다고 했다. 다음 진료는 두 달 뒤 오늘로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이제까진 한 달에 한 번이었는데... 진료에 늦게 오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엄니가 여자 의사는 귀찮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엄니의 귀 상태가 좋아진 것일까? 어쨌든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신장투석실에 가야 했다. 거기서 오늘도 엄니는 4시간 동안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네가 오니까 그 여의사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거 있지?, 거기다가 오늘은 그리 안 아팠어, 평소엔 그리 아프게 하더니만..."
엄니는 병원 복도를 걸어가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엄니는 진료실에서 그렇게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놓고 스스로는 정신승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딴에는 아들이랍시고 하나 와 있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줄 알고... 이비인후과에 갈 때는 내가 따라가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엄니와 같이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니를 신장투석실에 모셔드리고 난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4시간 후, 다시 병원으로 엄니를 모시러 가면서 다시 죽집에 들러 전복죽을 샀다. 오늘 CT 조형제를 맞느라고 주삿바늘에 찔리고, 진주종을 파내느라 귀를 긁어내고, 신장투석을 하느라 그 모진 고생을 했을 엄니가 저녁도 못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우리를 위해 그렇게 고생하시고 오늘도 그렇게 병 치료로 고생하신 엄니가 언젠가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더는 고통 없이 사시다 조용히 가시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고통 없이 지내시기를... 병원으로 가는 차속에서 석양에 지는 노을을 보며 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