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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l 08. 2024

엄니의 대장암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17)

(그림출처: http://photo.naver.com/view/2005110811245642721)


엄니의 병명은 예상대로 '대장암'이었다.


엄니의 CT사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는 내게 엄니의 대장에 몇 cm 정도의 암덩어리가 보인다고 했다. 대장암일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확실한 판정을 하기 위해선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STOP이라고 말했다.  


내가 더 정확한 판정을 위해 정밀 검사를 하겠다고 했으면 의사는 대장 내시경을 하자고 했을 테고 내시경을 엄니의 대장에 넣어서 CT에서 본 암덩어리 조직을 잘라내서 조직검사를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일련의 검사들이 엄니의 대장에 있는, 아니 있을지도 모를 암세포의 분열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모두가 아시다시피 암세포라는 건 사람 몸의 정상세포가 아닌, 돌연변이 세포이다. 어떤 원인으로 그런 돌연변이 세포가 생기게 되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세포가 사람 몸에 출현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노화, 스트레스... 등등과 관련된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사람이 늙어감에 따라 그 몸의 정상세포들이 뭔가 스트레스를 받아 암세포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치료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현대의학의 프로세서들은 그 암세포에 더욱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암세포는 더욱더 많은, 자신과 같은 암세포들로 분열, 복사, 전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해 여든 둘인 엄니에게 있어서 그런 검사와 치료들은 한편으로 치료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론 암세포들을 더욱더 많이 생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이제 그만하겠다고, 더 이상의 검사와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누나와 가족들의 의견을 모두 모은 말이었다. 아버지의 말기 후두암 투병 상황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누나도 엄니에겐 그런 고통은 주지 말자고, 그나마 건강할 때 먹고 싶은 것을 드시게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시게 하고 손주들 재롱 속에서 서서히 그 생명의 불꽃을 꺼지게 하자고 나와 무언의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엄니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니, 엄니 뱃속에 뭔가 혹 같은(?) 게 자라고 있대, 그런데 그게 암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대, 근데 정확히 알려면 자세히 검사를 해야 하고 그러자면 긴 바늘을 엄니 뱃속에 찔러 넣어서 그 혹덩어리를 잘라서 자세히  검사를 해야 한대, 엄니는 팔에 혈관주사 하나를 맞아도 아파 죽는 사람이잖아, 근데 그런 주사를 몸에 넣으면 얼마나 아프겠어?, 아버지 하는 것 봤지, 그렇게 검사하고 수술받고 싶어?"


"나도 그래는 안할란다. 너거 아버지 보이 만정 떨어지더라, 나도 죽었으면 죽었지, 그래는 안할란다!"


엄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다. 그리고 나보다도 더 암이라는 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귀가 있어 누구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그 암이라는 게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에겐 빨리 안 퍼진단다. 그래서 내 친구 중에는 암 걸린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젊은 사람처럼 암이 몸에 빨리 안 퍼져서 아직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 나도 마, 그래 할란다. 이 나이에 신장이 안 좋아갖고 투석도 해야 하고 수술도 힘들낀데 그러케 힘든 수술 배 열어서 나도 힘들고 너거도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살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늘이 불러주는 날이 있으몬 자다가 죽은 듯이 가면 그뿐이제 뭐~"


엄니는 의외로 담담하셨다. CT사진을 찍을 때 벌써 당신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물어보셨나 보다, 아니, 그전에 벌써 아시고 계셨는지도 모르지...


"그래, 엄니, 이제 엄니 나이면 수술보다도 그게 나을지 몰라, 젊은 사람들처럼 몸에 피가 빨리 돌지 않으니 암이 퍼지는 속도도 늦고 하니까, 늙은 사람들은 굳이 수술은 하지 않고 그저 암덩어리를 인생의 마지막 동반자다~ 하생각하고 '끝까지 안고 간다'는 마음으로 같이 가는 경우도 있대. 나나 누나도 그게 좋을 같다고 무언의 합의를 상태야"


"그래, 너거 아부지가 그 후두암으로 말년에 그렇게 고생한 걸 지켜보았으니 너거들도 그리 생각 안 했겠나, 나도 옆에서 너거 아버지를 끝까지 병수발했지만 하면서도 이건 사람이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너거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더라,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아무 여한이 없대이, 그러니까 너거들도 괜히 다른 생각 갖지 말고 우리 이대로만 같이 잘 살자!"


엄니는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돌리셨다. 순간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옆에 있던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다같이 한바탕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었다. 하늘이 왜 이런 시련을 우리에게 내려주시나 하고 한편으론 원망도 했지만 엄니는 오히려 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하셨다.


"괘안타!, 아범아, 괘안타!, 어멈아, 너거들이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무 소원이 없대이~"


엄니의 위로가 내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언젠가 엄니가 내 옆에 없는 그날이 와도 이 목소리는 영원히 내 귀에 깊은 울림으로 남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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