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 여행(2)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3)

by 소방관아빠 무스

배가 우도에 가까워오니 보였다. 그 에메랄드빛 바다, 한국에서 이런 바다를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으랴, 거기다 그 위에 펼쳐진 초록의 땅 위를 노니는 한 마리 말, 너무 평화롭고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가슴으로 마시며 나는 연신 사진기 앱의 셔터를 눌러댔다.


(여객선이 처음 우도에 닿았을 때)


배가 선착장에 닿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도를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다가 세워진 전기차(2인용)를 보고 그것을 타려고 대여해 주는 곳까지 들어갔지만 안 타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왜냐하면 금액을 물어봤는데 빌려주는 분이 정확한 금액은 말하지 않고(어디에도 금액 표시가 없었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앞에 팀과 흥정(?)을 하고 나서 우리에게 금액을 얘기했는데 앞에 팀에게 들은 금액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팀은 2만 5천 원, 우리 팀은 3만 5천 원?~ㅋ- 사람 수 차이인지, 시간 차이인지 알 수 없었는데 투명하게 금액을 제시하지 않는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쿨하게 전기차는 패쑤하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8000월짜리 순환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로 얼마 달리다 보니 정말 눈이 부시게 푸른 물이 출렁이고 있는 해수욕장이 나왔다. 나중에 우도 지도를 보니 서빈백사라고 불리는 홍조단괴 해변이었다. 서빈백사라는 말은 서쪽에 있는 흰모래 해변이라는 뜻이고 홍조단괴라는 말은 동명의 해양 플랑크톤의 석회질 퇴적물로 이루어진 해변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쨌든 복잡한 지명은 여름 하늘에 날려버리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그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에 몸을 맡겼다. 홍조단괴의 산호초 같기도 하고 조개껍질 같기도 한 조약돌들이 발밑을 간지럽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그곳에서 도시의 답답함을 털어버렸다. 정말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진정한 휴식은 대자연과 함께 하는 것뿐이라는 이 간단한 진리를 왜 몰랐던가?


(우도 서빈백사 해수욕장~음향은 끄셔도 됩니다.~^^;;)


수영을 마치고 나서 근처에 있는 자장면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때렸(?)다. 10,000원의 가격치고는 양이나 맛이 딱히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고 나니 뭔들? 안 맛있을까? 다 먹고 나서 바다를 보니 흡족했다. 젖었던 내 피부도 제주의 햇살과 바람에 잘 마르고 있었다. 배도 채웠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우도봉으로 향했다. 우도봉 입구에서 버스를 내린 것은 계획된 일정이 아니었다. 단지 순환버스 기사가 우도봉이 경치가 좋다고, 너무 좋아서 제주 와서 거기만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우리를 꼬드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려서 보니 정말 경치도 좋았지만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순환버스라 정류장에서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태우려면 일단 버스에 타 있는 사람들이 내려줘야 하는 거니까, 어쨌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마인드로 우리는 내렸다. 우리도 좋고 기사님도 좋고, 또 다른 곳으로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버스를 타서 좋으면 되는 거니까...


(우도봉 입구의 너른 들판~가슴이 탁!~^^)


우도봉 입구에 들어서자 정말 넓은 들판이 나왔다. 난 영화 '주라기 공원 1'에서 본 것처럼 태곳적 들판이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브론트 사우르스라도 산책하러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넓은 들판을 뛰놀고 있는 것은 몇 마리의 말과 제주의 바람뿐이었다.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우도봉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에 해식 절벽을 만났다. 바람과 파도에 깎이어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제주도는 과거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채 섬이 되었기 때문에 검멀래 해안처럼 검은 현무암이 섬을 뒤덮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재촉하여 소머리 오름과 우도 등대를 거쳐 검멀래 해변을 걸었다.


(우도봉에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해식절벽)


날은 뜨거웠지만 제주의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발밑으로 보이는 검멀레 해변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나무로 된 울타리를 따라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허공을 걷고 있노라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우도등대.jpg
우도등대2.jpg
검멀래 해변.jpg
우도해변2.jpg
(우도 등대와 검멀레 해변)


그렇게 우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지도를 펼쳐보았다.


우도지도.jfif (우도 관광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우도 지도~)


왼쪽에 있는 하우 목동항에서 여객선을 내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서빈백사 해수욕장에 내려 수영을 하고 그다음부터 검멀레 해변까지 거의 우도의 절반을 걸어서 돈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도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았다. 정말 대자연과 함께라면 언제까지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좋은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은 사실은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것이다. 승용차를 타기보단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기보단 걷는 것이 환경이나 우리 몸에 좋을 수 있다. 많은 음식을 먹기보단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이 환경이나 우리 몸에 더 이로울 수 있다. 이렇게 조금 불편하고 조금 더 욕심을 줄임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역설을 왜 사람들은 모를까? 우리가 일회용 용기를 조금 덜 배출할수록, 음식물 쓰레기를 좀 더 줄일수록, 문명의 이기를 조금 덜 이용할수록, 자연은 더 많이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미니멀리스트가 될수록 이런 자연은 우리 곁을 더 지켜줄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는 물러나고 산불과 태풍, 그리고 폭우와 폭염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지구는 우리와, 또 우리 후손들과 함께 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