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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Aug 06. 2019

내가 수필을 사랑하는 것은

김애란 작가의 산문을 읽는다. 그의 소설은 우울하되 따듯하다. 현대소설은 우울하다는 공식을 벗어나진 않지만, 그의 문체 속에 녹아있는 그의 정겨움을 읽는다. 그의 색깔이 더욱 다채롭게 드러나는 산문집은 대놓고 따듯하다. 대놓고 정겹고, 대놓고 행복하다. 그의 산문 속에서 세상을 향한 다정한 눈길을 읽는다. 작은 것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배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읽는 작가들은 세상을 보듬는 글을 쓴다. 온갖 불평, 불만, 비난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그들은 작고 하찮은 것들, 혹은 귀찮은 것들까지도 모두 감싸안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그래서 수필이 좋다. 소설은 으레 흥미로운 음악들이 그렇듯, 흥미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 단조 형식을 취한다. 음울하고 슬프고, 비극적이다. 비극이 없으면 소설은 생기를 잃는다. 나는 그 비극 때문에 소설 읽는 것을 가끔 꺼리기도 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 소설 읽는 건 딱 질색이다. 가뜩이나 우울한 기분에 불필요한 슬픔을 더하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유려한 작가들의 산문은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통통 튀는 그들의 문체와 상상력은 생각 없이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 사물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대신 생각해 주는 듯하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고 개연성 있는 글을 쓰는 데에는 워낙 자신이 없다. 써본 적도 없고 성미가 급한 편이라 소설을 써도 서너 페이지 만에 완결을 내버린다. 거의 막장드라마 수준의 급전개다.


그러나 수필은 분량의 강요도 없고, 형식도 없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매력적이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고민을 토로하고 싶어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소 소심한 고민들. 이 고민들을 소설에 담기엔 비유가 너무 어렵고,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쉽게 생각하고 이해했으면 해서 솔직하고 가감없는 수필을 쓴다.


수필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문득 중학교 때 배웠던 수필의 개념, 형식, 예시 등이 떠오른다. 가장 자유로운 글의 형식인 수필을 공식처럼 암기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수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의 종류이자,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행복한 글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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