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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임새 Oct 19. 2018

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불행한 나라

신뢰

4살, 6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돌봄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지만 양가 부모님은 멀리 살고, 일가친척도 친구도 한 명 없고, 의지할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독박육아를 시작한 내게는 보육기관이 유일하게 돌봄을 함께 할 희망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돌봄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너무 벅찬 마음에 어린이집의 문을 두드렸다. 돌봄의 부담을 나눠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야 마땅했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학대를 당하는 건 아닐까. 말을 안 듣는다고 어디 골방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밥을 빨리 안 먹는다고 다 못 먹은 식판을 빼앗긴 건 아닐까. 낮잠을 안 잔다고 구박받진 않았을까.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문득문득 불안해지곤 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정할 때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기 싫다는 이야기를 했다. 괜한 상상을 펼치며 기관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니기 싫은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텐데 근거없는 의심을 하느니 아이에게 잘 맞는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여러 기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여기저기 상담을 다니면서 차량을 타야하는 거리에 있지만 '좋은'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발품 팔고 어렵게 찾은 어린이집이었다. 다행히 옮긴 이후로는 아이가 너무 재밌게 잘 다녔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시간이 흘렀다. 많은 친구들이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으로 보낼지 계속 어린이집에 보낼지를 선택해야 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남았다. 판단 기준은 하나였다. 오랜 시간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쌓여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돌봄 환경이 좋았고 아이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아이도 보육교사도 부모도 불행한 보육시설


지난여름에는 4살 어린이가 통학 차량에 7시간가량 방치되어 숨졌다는 소식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고, 아동학대 소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또 터진다.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좋은 선생님들과 돌봄을 나눠 하면서도 기관에 아이를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분노하거나 슬퍼할 일은 많다.


최근에는 11년 전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성민(당시 23개월)군이 소장 파열에 의한 복막염으로 사망한 '성민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어린이집 원장과 남편은 성민이 복부를 발로 차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폭력 현장을 직접 목격한 성민이 형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인정했다.


지난 12일 '추적 60분'에서 이 사건을 다시 파헤친 이후 원장 부부를 엄벌해 달라는 청원이 41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반면, 지난 13일에는 김포맘카페에서 아동 학대 의심을 받고 신상이 유포된 어린이집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맘카페에 어린이집 소풍에 간 자신의 조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돗자리를 터는 데만 신경 써 아이를 밀치고 방치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되었고, 이 글에 어린이집 교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동조 분위기가 주를 이루자 보육교사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다.


해당 기사에는 맘카페 엄마들이 선량한 어린이집 교사를 아동학대로 의심해 마녀사냥해서 죽음으로 몰았다거나 맘카페를 폐쇄하라는 등 비난여론과 함께 해당 글을 게시한 이모와 맘카페를 강력처벌 해야 한다는 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과장하여 퍼트리고 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마녀사냥은 당연히 나쁜 거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폭로자를 찾아내 똑같이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을 강력하게 한다고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죄없는 보육교사를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취해야겠지만 단편적인 장치만으로 쉽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엄마가 되면서 사회현상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정이 복잡하여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아진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엄마들의 과민반응을 탓하기 전에 왜 엄마들이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과한 반응을 보이며 분노하는지를 짚어보면 좋겠다. 특정 맘카페나 일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를 잃은 보육기관이 문제다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약자 중 약자에 속한다.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다. 아이들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돌봄을 하는 주체인 부모와 보육기관의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보육기관에 대한 신뢰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들은 늘 마음이 불편하다. 보내는 보육기관을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하는데 보내면서도 언제 내 아이가 아동학대를 당하지는 않을지, 유통기간이 지난 식재료로 부실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량 운전자에 의한 성폭력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차량에 혼자 남는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아이를 살핀다.


어떤 사건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이해하는 마음이 우선하기 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우려를 먼저 하게 되는 보육시스템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보육시설 사건사고를 근복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부모와 보육교사가 상호 신뢰하며 존중하는 관계를 맺기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유치원 비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으면서 유치원 운영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고 지원금을 개인적으로 횡령하여 몇 억씩 부당이익을 챙겼다. 유치원의 운영 실체가 이러하다는 말에 어린이집은 깨끗하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육기관 전반에 총체적 불신이 쌓이고, 사랑과 관심으로 돌봐야 할 아이들을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개인의 인식 전환으로 걱정과 불안을 떨치고 보육기관을 신뢰하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불신은 하루아침에 한두 번으로 쌓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치원 입장에서 운영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원비를 인상한다고 말해도 그 말을 선뜻 믿기 어렵다. 설령 그 말이 진실이고, 비리없이 깨끗하게 운영하는 유치원이라 할지라도 신뢰보다는 불신이 깊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믿어지지 않는거다.  


선생님들은 부당한 대우, 비리의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내부고발자로 찍혀 평생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도 즐겁게 할 수 없는 노동환경에 속해 있다.


원장 눈치 보랴 아이들 돌보랴 부모들의 감시까지 받아야 하는 보육교사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돌봄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아이들에게 쓰일 교육비나 식비가 횡령되는 것을 목격하고, 높은 강도의 노동에 열악한 임금을 받고,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담스러운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교사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로 상호신뢰 회복돼야


확실한 제도 개선과 보육기관 혁신이 필요하다. 보육기관 운영비 사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법을 만들고, 철저히 관리하여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보육교사들이 아이들을 집중해서 돌볼 수 있도록 보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학대 등 사고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하고, 돌봄의 특성을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또, 보육교사 1인당 담당 인원을 줄이고, 돌봄 업무 외 업무 스트레스를 줄여 노동 부담을 줄이고, 돌봄의 질을 높임으로써 아이와 교사의 유대관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어느 보육시설에 가더라도 선생님들이 편안하고 안정되게 아이들을 돌본다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보육기관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돌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맘카페를 폐쇄하고 엄마들의 입을 막는다고 해도 보육교사나 기관에 대한 경계의 마음을 거두기는 어렵다. 신뢰할 수 없는 보육시스템은 부모, 아이, 보육교사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연일 계속되는 보육기관 관련 뉴스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왕복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계속 보내야 하는 내 현실을 돌아보면 답답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집 근처 아무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겨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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