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막중한 책임감
유아기때 부모의 사랑의 듬뿍 받고 자라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안정감이 있고 독립적인, 자존감 높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인 것 같다.
내 뒤에는 부모가 있고, 내 부모는 전적으로, 그리고 무한대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뻭’이 있으면 그 아이는 외부에서의 어떠한 자극에도 쉽게 상처받지 않거나- 상처 받더라도 금방 회복하거나, 혹은 아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지 않는다.
내 자신이 중요하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임을 이해하고 있으나 나자신에게 집중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무시나 공격이 나에게 해가 될 만큼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나 유아독존과는 조금 그 성질이 다르다.
아빠 엄마가 사랑을 듬뿍 준다는 의미는 ‘니 멋대로 하세요’하며 방관한다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하고 다그치거나 화내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따뜻한 품에 안아주며 ‘너가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주는 방식으로 사랑해 주기 때문에 나만 맞다, 내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는 않을 거다.
또, 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잘 구축이 되어있으면, 타인의 자아도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게 된다.
유아기때의 이런 기억들은 어른이 되서까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하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들은 계속 부족한 사랑을 갈망하고 타인에게 기대게된다.
누군가 나를 믿고 사랑해주면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나 좋아해줄 수 있는 건가?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다’ 생각하고 금방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또 이런 생각에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을 믿어 실망하는 경우가 생기게되면 내 인생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죄는 아니고 사람을 믿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유혹에 취약한 이런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잘못된 사랑을 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남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이렇게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사실 머리로 알고 있는 이론이 쉬운거지 실제로 아이를 대하다 보면 사랑을 듬뿍 준다는 게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몰라 시행착오를 계속한다.
또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 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수학문제 풀 때 글씨를 엉망으로 써서 자기 글씨 자기가 못알아볼때, 밥 안먹고 돌아디니며 놀때, 친구들과 투닥거릴 때, 외출 후 손씻고 옷갈아입어라, 숙제해라, 코는 후비지 말아라, 밥은 돌아다니면서 먹지말아라 네다섯번 반복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리고 그 말들을 못들은 척 하고 있는 아이를 볼 때 …..
가슴은 답답해지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식은 땀 나고 머리에서는 연기가 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지르며 화내는 나를 볼 때, 잔소리를 연타로 랩하듯 쏟아내는 내 모습을 볼 때 아이는 내 모습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할까.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자존감은 결코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의 어렸을 적 엄마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나를 많이 사랑하셨지만 북적북적 연년생 네 명의 자녀를 기르면서 끊임 없이 잔소리를 하고 화를 참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이 내게 유전적으로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고해성사라도 하듯 화낸 후 꼭 엄마가 화를 너무 많이 낸 것 같다 미안하다, 다음에는 더 마음을 조절 잘 해보겠다라고 얘기를 해서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 매일 30분 정도 아빠, 아이와 셋이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 중에서 재밌거나 속상하거나 특별한 일들을 얘기하고, 아빠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얘기를 꼭 들려주려 한다.
최소한 매일 매일의 이런 작은 시간들이 쌓여서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들이구나, 나는 보호받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아이가 2학년이 된 지난 3월부터 나는 비로소 전업맘이 되었다.
거의 모든 직장 맘 가정의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생후 6개월부터 7년 이상 우리 아이는 하루 중 대부분을 쭉 다른 사람 손에 맡겨져서 커왔고, 엄마는 저녁을 먹고 잠자기 전 한두시간, 그리고 주말 중 하루만 보았었다.
그러니 지금와서 그동안 숭숭 비어버린 마음들을 채워넣는다고 해도 당췌 쉽게, 그리고 충만하게 채워지기나할까.
의견이 강한 우리 아이가 놀이 중 다수의 무리 친구들에게 같이 안 놀겠다는 ‘선언’을 듣고 친구 엄마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엄마를 구석으로 끌고 가 놀이터에서 내가 기억하는 2살 아기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펑펑 울어버린 오늘, 나는 심장이 둥둥거리고 식은땀이 다시 났다.
나는 아이가 조금 더 자극에 의연해질 수 있도록, 나에게 보내는 그 어떤 시그널도 나를 해칠 수 없으며 내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내 마음이 삐죽거리고 있다면 나만 손해라는 것을 씩씩거리며 땀과 눈물이 범벅된 아이를 붙잡고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나니 아이가 조금은 안정감을 찾고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일들이 바람처럼 스쳐가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친밀감, 갈등과 소외감, 그리고 화해와 이별 이런 것들을 우리도 얼마나 많이 겪어왔나.
죽도록 좋던 친구가 멀어지기도 하고 죽도록 밉던 친구가 더이상 미워지지 않고, 화나거나 부끄러워 죽겠던 순간도 지나가면 아무일도 아니었고...
이런 마음의 소용돌이 들이 앞으로 계속 있을거다, 앞으로 더 울일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건 너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말자.
속상한일 있으면 언제든 엄마가 들어줄테니 엄마에게 얘기하렴
위로를 해주고 나서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핸드폰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다시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 다툼과 화해의 사이클은 점점 더 파고가 높아지며 영원한 도돌이표를 그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