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문과 과목들을 듣다가 서평을 쓰라는 과제를 종종 받았다. 서평만큼 애매한 과제물도 없는 것 같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서평에서 책에 대한 평가가 주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백지 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마음껏 풀어놓으면 되는 글이 바로 서평이다. 그런 자유가 주어진 만큼, 똑같은 책을 읽고도 책 내용 요약에 불과한 서평을 제출하는 사람도 있고(나는 주로 여기에 해당) 한 편의 논문감 또는 페북 수천 따봉을 긁어모을 만한 글을 써 내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서평, 그러니까 책에 대한 학생의 평가가 역설적으로 학생에 대한 교수의 평가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긴 하다. 그래서 나심 탈렙이란 사람은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서평자의 자질이 지극히 높지 않다면 서평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도리어 서평자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평가가 평가자의 밑천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책뿐일까. 주변 정치, 사회 현상 같은 딱딱한 주제는 물론이고 음식, 영화, 음악 등 사실상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주변 모든 요소들은 평가자의 수준과 경험을 반영한다. 재밌는 영화네.. 좋은 노래네.. 맛있는 음식이네.. 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영화의 주제의식, 곡의 코드진행, 식재료의 특성을 이야기하며 평하는 사람은 경험 및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특히 국제관계, 노동, 의료제도 등과 같은 무겁고 굵직굵직한 주제에 대해서 그런 경향이 심한데, 이런 분야는 기본적으로 역사, 지리학, 경제학 등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갖춘 다음에야 인상비평을 넘어서는 논의다운 논의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식이 부족한 나는 이런 이야기에는 되도록 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가 가장 자극적이라서 사람들끼리 얘기하고 싶으면 한마디 거들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편가르고 싸우는 것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볼 수 있는 인류의 본성이 아니던가! 포털 사이트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방구석 정치가, 외교관, 판사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바깥에서 사람들과 뉴스를 볼 때 정치 내용이 나오더라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의견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가 공유하는 배경지식이 너무 다르고, 판단의 근거를 전달하는 것만도 짧은 식사 시간에 수행하기에는 너무 소모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밥 먹으면서 하는 말들이 다 사실인지도 불확실하고.
그래서 나는 ‘서평은 서평자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내 수준을 스스로 까발리고 싶거나 아주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면 되도록 평론 행위를 아끼는 것이 개인 신상에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걸 알면서 이런 글을 쓰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