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라떼 한잔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가기로 한다. 저녁을 먹고선 바로 갈까 카페를 갈까 고민하다 먼저 카페가 눈에 띄어 카페로 들어온 거지. 조금 전 저녁을 먹은 텐동집도 너무 좋았는데 여긴 어떨까 싶다.
반지하의 창 너머로 보이던 공간은 적당히 어둡고 과묵했는데 생각 정도 보이는 수준으로 딱 그런 느낌이다. 다만 쉴 사이 없이 떠드는 그것도 톤이 귀에 쏙 들어올 정도의 여2남1의 그룹만 제한다면 정말 좋을 공간이다.
나는 아이리쉬라떼가 뭔지 묻는다. 아이리쉬 위스키가 들었다면 Hot/Ice 에 상관없이 주문하려고. 하지만 아쉽게도 시럽이라 그냥 라떼를 주문한다. 아주 찰랑찰랑 그득히 나오는데 딱 봐도 질감이 괜찮지 싶다. 마시자니 어디가 우유고 어디가 커피고 어디가 물인지 경계를 알 수 없는 느낌. 내가 좋아하는 스펙트럼이 살아있는 류의 라떼인거다. 무겁지 않게 넘어가는 라떼가 기분 좋다.
내일이면 월요일. 다시 치열해져야 할 시간. 오늘의 나에겐 값진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건 자리들이 다들 불편하게 보인다는 정도. 내가 등받이 없는 작은 원형 의자에 앉아 바에서 글을 쓴다고 그런 게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여기의 분위기가 추구하는 바를 열심히 보여주긴 하네.
DENIRO 라니, 아마도 로버트 드니로에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서 가게에 들어섰다. 카페란 모름지기 너무 밝아서도 아니 되는 생각이, 아마 마지막 휴일 저녁의 카페라 그럴 거다. 따뜻한 붉은색의 백열등은 가격이 조금 비싸도 그만큼의 온기를 가진 빛이다.
카페에 들어서서의 소음은 리시버를 귀에 꽂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내가 지배한다...는 등의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간을 사유화하는 방법 중 이만한 게 어딨나 싶은 게 내 생각.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본다.
라떼는 참 큰 잔에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안캅이었던가 싶네. 밥도 충분히 먹고 가서 배도 부른 상태인데 좀 더 작은데 나와도 좋지 않았나? 그리고 조금 더 가격을 저렴하게 잡아도 좋았을 텐데. 업장에서 메뉴를 내는 형편이면 양을 조금 늘리고 가격을 더 받는 게 좋긴 하지만. 오리지널 카푸치노 스타일이 있다면 그걸 주문했을 텐데. 그러면 양이 적어 부담스럽진 않았을 테니. 맛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편.
아, 아이리쉬 하니 생각나는 게 베일리스인데. 크림계 리큐르라 보관이 용이치 않으면 좀 그런데 여름에 시원하게 자주자주 마실걸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한병 들여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일리 리큐르랑 적당히 믹스해서 마셔도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