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1 (1)

by 이루야




왕가위의 중경삼림을 본 사람이라면 홍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앵글 안에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배신을 당한 뒤 모든 것을 감수했던 금발 가발의 임청하, 양손에 소스 통을 들고 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왕페이, 유통기한이 있는 통조림에 집착하는 금성무, 새 비누로 바뀐 줄도 모르고 비누가 살쪘다고 말하는 양조위. 내가 부모님의 말을 알아듣고 ‘미안해, 고마워, 화가 나, 속상해’라는 감정을 하나씩 표현할 수 있을 무렵 중경삼림이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고등학교 때 본 영화에 매료되어 홍콩에 갔다고 하기엔 홍콩은 전부터 익숙한 곳이었다. 내 또래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침대에서 ‘홍콩에 가고 싶어’ 혹은 ‘홍콩에 보내줄게’라는 말은 하나의 관용어가 되었다. 그곳의 홍콩은 쉽게 닿을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지금보다 더 느낄 수 있는 곳은 상해도 도쿄도 뉴욕도 아닌 홍콩이었다. 다른 나라나 도시를 비유해 말하는 관용어는 홍콩뿐이었고,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홍콩은 화려한 낭만이었다.


왕가위로 시작해 찾아본 홍콩 영화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는 것처럼 몽환적이었다. 혼돈 속에도 그들만의 색이 있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느낌은 오히려 ‘우리다운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특히 홍콩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들의 억양이었다. 그들의 언어에는 한 문장 안에 무수한 레가토가 있었고, 음과 음 사이는 긴밀하게 이어졌다. 분명 사람들은 한 단어씩 말을 했겠지만, 내게는 꼬불꼬불한 긴 지렁이와 짧은 지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들렸다. 말끝을 끄는 방식은 어딘가 억울한 사람이 감정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아마 홍콩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거나 다정다감한 사람인가 봐. 손짓하며 짜증을 내도 어쩜 이렇게 정겹지? 네 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칭얼대는 것 같아. 엄마, 나 초콜릿 먹고 싶다고요! 초콜릿! 초콜릿!’이라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재은이와 홍콩에 간 건 5월에 있을 재은이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재은이는 “결혼을 해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이고 지금처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을 거야”라며 나를 떠나는 사람처럼 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함께 사는 사람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1월 1일이 되면 각자의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일찍 일어나지 못해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첫 일출은 인생의 시작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새해 기원을 해야 더 행복한 한 해를 보낸다는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 소망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어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재은이와 나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손바닥만 한 손전등을 들고 한라산에 올라갔다. 어두운 새벽 하늘에는 유난히 크게 보이는 달과 곧 쏟아질 듯한 별들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서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일출을 보러 모인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그 달빛은 우리를 인도하는 것처럼 따뜻했다. 만약 새벽 산길에 우리 둘뿐이었다면 무수한 점박이 별을 징그러운 벌레처럼 여겼을 것이다. “저 별들이 곧 나에게 떨어질 것 같아. 벌써 몸이 간지러워!”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그곳의 홍콩은 쉽게 닿을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지금보다 더 느낄 수 있는 곳은 상해도 도쿄도 뉴욕도 아닌 홍콩이었다."



[이 작품은 6월 17일, 독립출판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책에서 계속됩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홍콩 클라우드』가 만들어지는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문장으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순간들을 그곳에 남기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함께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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