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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Feb 25. 2023

고객을 떠나게 하는 간단한 방법

다시 만난 올영, 쉬웠던 헤어질 결심

*폭풍처럼 써내려 간 글이지만 감정을 내려놓고 다시 정돈하고자 시간이 꽤 흘러 올립니다. 이때의 경험은 22년 12월의 일입니다.



영 좋지 않았던 재회


    올리브영은 오래전에 방문하거나 구매해 본 이후 한동안 쓰지 않았다. CJ One 멤버십의 VIP 등급 유지를 위해서 가끔 쓰던 수년 전 이후로는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생일선물로 올리브영 기프트카드를 받아 재회하게 됐고, 앱을 다시 설치했. 이때 1차로 불만이 생겼다. 바코드 이미지가 있음에도 쓸 수 있는 방법을 앱에 한정해 두다니! 올리브영의 경우 온라인 채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프라인 매장이 수두룩한데도 말이다. 다양한 온라인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기억에 남을 만큼 불편한 건 처음이었다.

    알고 보니 이건 사실과 달랐다. 결국 나를 폭발하게 했던 사건(?) 이후에 기프트카드로부터 시작된 이번 올리브영과의 만남을 꼼꼼히 돌아보며 글을 다듬다가 알게 되었다. 앱이나 PC로 기프트카드를 등록하지 않아도 바코드만으로 매장에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유의사항의 작은 메모로 기재되어 있어서 내가 놓쳤던 것이다. 상품 상세 설명에는 이미지로 앱/PC의 기프트카드 등록 절차만 안내하기에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앱을 깔지 않을 방법이 없는지 다 찾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싶었다.




일주일 후 드림 서비스?


    앱 설치 후에 구매할 상품을 둘러보는데 딱히 사고 싶은 제품이 없었다.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이 화장품이나 일부 간식류인데 나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채널이 따로 있고, 당류가 많은 간식은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사용하지 않는 앱은 바로 삭제하는 편이기 때문에 빨리 선물 받은 기프트카드 잔액을 쓰고 앱을 지우고 싶었다. 결국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 올리브영에서 굳이 살 이유가 없는 것들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집에서 일할 때 마실 차나 뷰티소도구, 네일 따위의 카테고리에서 이것저것 담아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배송예정일이 D+6일로 뜨기에 1차로 한번 놀랐다. 오늘드림을 그렇게 다양한 채널에서 광고하더니 일반 배송은 이 지경인가 싶었다. 이럴 거라면 오늘드림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주문을 중단하고, 재시도해보니 오늘드림으로살 수 없는 물건이 수두룩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직구상품처럼 '잊힐 때쯤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 걸린다는 주문을 마쳤다. '요즘 웬만한 직구상품도 일주일이면 오는데..' 하는 불만은 삼켰다. 분기마다 하는 올영세일 기간이라고 하고, 일주일쯤은 남아있는 차를 마시며 버틸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실 불만을 참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만남이 누군가의 연결(선물)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내돈내산이었다면 요즘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배송시간을 참고 기다릴 이유가 있었겠는가.




적었던 기대보다도 큰 실망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서재 공간은 집에서 가장 추운 공간이라 겨울이면 차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올리브영에서 주문한 수십 개의 차를 믿고 추가로 주문하지 않은 홍차는 일주일 새 진작 다 떨어졌다. 한두 개 남은 티백에 불안해질 때부터 한 번쯤은 의심을 해봤어야 했는데…. 배달앱에서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고하고 그보다 일찍 오는 경우를 워낙 많이 경험했기에, 올리브영도 그런 안전장치가 아닐까 믿었다. 빨리 올 거라고 기대하게 하고 실망시키는 것보다 계획보다 빠르게 처리되는 경험이 더 나을 테니까.

     배송예정일 아침에 올리브영으로부터 알림톡이 왔다. 드디어 기다리던 배송안내인가 하고 반갑게 클릭했더니 웬걸, 배송이 지연된다는 메시지였다.


    e커머스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고, 지금도 업무의 어느 정도는 온라인 커머스에 걸쳐있다. 배송예상일을 서비스 화면에 보여준다는 건 어느 정도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을 것이다. 위탁 배송이 대부분인 특성상 예상 도착일을 제공하지 않는 현 회사의 서비스에서도 사실 대부분의 배송은  2일 내에, 일부 예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배송 사흘 내에 완료된다. 할인폭이 큰 올영세일 기간이라고 해도, 같은 규모의 세일을 한 두 번 진행한 것이 아닌 올리브영에서 그걸 고객이 감안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배송이 지연되는 상황은 배송예정 당일이 되기 전에 미리 파악이 되었을 텐데 미리 안내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배송예정일 알림 서비스를 도입했던 온라인 서점의 경우, 배송지연이 예상되면 굉장히 빠르게 알려준다. 우리가 미리 안내했던 것보다 늦어질 텐데, 그래도 배송을 기다릴 것인지 취소 후 다른 대안을 찾을지 선택하라는 것으로 느껴진다. 아쉽긴 해도 화가 날 일은 별로 없다.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생기는 법이고, '예정'은 어디까지나 '예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정'이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면 그에 관계된 사람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또 한 가지 나를 화나고 아쉽게 한 건 그 메시지에 담긴 내용이었다.

주문할 땐 우리가 오늘 받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안 돼.


    실제 메시지가 이렇지는 않았지만 그 메시지에는 배송이 지연되는 이유도, 예상되는 배송시기도 없었다. 결국 나에게 추가로 주어진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오늘 물건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건 늘 같은 시간에 날아오는 택배 출고 문자가 오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애초에 적었던 기대조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일주일 만에 한다는 연락은, 예상을 빗나간 배송이 대체 언제쯤에 완료될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전부였다. 올리브영은 소통 채널을 열자마자 닫았다. 물론 애초에 소통이라 볼 수 없는 일방적 메시지였지만.




굳게 마음먹은 헤어질 결심 


    1일에 주문한 상품들은 7일에 배송예정이었다. 하지만 10일 오전까지도 추가연락 없이 결제완료 상태에 머물러있었다. 진작 떨어진 홍차에 이어 다른 허브티까지 떨어져 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시로 앱에 들어가 주문상태를 확인했다. 배송예정일의 업데이트? 당연히 없었다. 답답함에 앱의 이런저런 화면을 이동하다 보니 10여 일째 배송준비조차 되지 않은 상품들이 오늘드림에서는 여전히 주문 가능으로 표시되었다. 물론 오늘드림에서 주문하려고 하면 또 근처 매장에 없어 주문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노출했다.


    직구보다 더 오래 걸리는 배송에도 '세일기간이라 저렴해서 배송이 몰리나보다'라며 일주일 간 기다린 것이 무색하게 주문했던 대부분의 상품 (1개를 제외하고)은 세일 후에도 가격이 같았다. 연락도 없는데 수시로 앱을 들락거리는 것도 10일이 다 되어가니 짜증이 점점 쌓였다. 전체 주문취소를 하려다가 기다린 것도 억울해서 다른 곳에서 새로 산 것들만 부분취소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로켓배송 지역이 아님에도 예상배송일은 (올리브영과 달리) 제대로 지켜왔던 쿠팡에서 마실 차를 주문해 뒀기에 마음은 편안해진 때였다. 그런데 결국 그 부분 취소조차도 쉽게 되지 않았다. 


    아직 배송준비 상태도 아닌데, 일부 상품을 취소하려고 하니 배송비를 부과한다. 남은 물건으로도 무료배송 기준을 넘기도록 최소한의 품목만 취소해도 결과는 같았다. 무조건 환불금액에서 2500원이 차감된 채로 환불받게 되어있었다. 아직 발송도 하지 않은 물건에 취소배송비가 부과되는 걸 이해할 수 없어서 몇 차례 시도하다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결국 전체 취소를 했다. 전체상품을 취소하면 배송비 부과가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배송 시작도 안 했으니까!) 이제는 일상인 '온라인에서 물건 주문하고, 집에서 받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경험이어야 할까. 한숨이 나왔다. 그 와중에 취소 사유에 '배송지연' 따위는 없었다. '변심'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문한 물건이 10일이 지나도록 못 받고 있지만, 어쨌든 내 변심이라고 한다. 10일이라면 사실 마음이 변해도 몇 번은 변할 기간이긴 하지. 헛웃음 치며 변심한 고객 1이 되어,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자발적이지만 비자발적인 선택을 마쳤다. 


    부분취소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터라, 남겨두고 싶었던 상품들을 다시 주문해 봤더니 이번엔 예상 배송기간이 3주로 나왔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주는 크래프트 상품도 아니고, 세일도 종료되었는데 무려 21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결국 바로 또 취소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갈았다. 매장을 갈 일을 만들어서라도, 뭘 사든 금액만 채워서 기프트카드를 최대한 빨리 써버리고 앱을 삭제하겠다고 다짐했다. 

    완전히 굳어져버린, 헤어질 결심이었다.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자기 서비스에서 취급하는 카테고리가 배송시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으면 이런 고객경험을 방치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라이프&뷰티라서 빠른 배송이 중요하지 않다면, 시간이 급한 식료품을 취급하는 것도 아닌데 오늘드림을 그렇게 열심히 광고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도 궁금해졌다. 올리브영에게는 직접 운영하는 앱에서의 구매보다 매장과 연계된 오늘드림이 더 가치가 있는 채널인가? 오프라인 구매가 객단가가 더 잘 나온다든가?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궁금했다. 애초에 고객경험을 나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서비스와 소통, UX가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일련의 경험으로 굳게 올리브영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며칠이 흐른 뒤 기사를 하나 읽었다. 올리브영의 12월 세일 기간에 일어난 배송대란으로 유저들에게 보상책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올리브영 세일이 시작된 날로부터 2주는 지난 뒤였다.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취소했던 나 같은 고객에게도 보상이 되는지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아직도 모른다) 보상을 해주든, 안 해주든 어차피 난 이미 헤어지기로 했으니까. 

    사실 사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메시지보다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시에 엄청난 배송지연을 미리 알렸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공교롭게도 이 글을 올리기 불과 며칠 전, 올리브영은 고객정보가 마이페이지에 잘못 노출되는 문제로 다시 차례 도마에 올랐다. 중요도로 보면 더 큰 사건이지만 이번에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기대가 없어서다. 





어떨 때 팬이 아니라 안티 팬이 되는가


    어떤 서비스가 한 명의 팬을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다. 어렵지만 시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이다. 서비스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들, 정말 어려운 일을 '팬'은 아무런 보상 없이도 한다. 반대로 사용자를 안티가 되게 하는 건 쉽다. 기본적인 기대조차 충족시키지 못할 때,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최악을 경험하게 했을 때 사용자는 그냥 이탈하는 것 이상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안티팬이 된다. 실망해서 앱을 삭제하고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건 서비스 입장에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안티팬은 그 정도에 멈추지 않는다. 팬들이 그 서비스를 여기저기 전파하고, 알리듯이 안티팬도 마찬가지로 부지런하다. 다만 그 전달하는 메시지의 방향이 팬과 반대일 뿐이다.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서비스, 사용자와의 소통이 일방적이거나 극도로 적은 서비스는 오랜 시간 사랑받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마켓컬리가 뷰티컬리를 표방하며 공격적인 활동을 보였다. 난 사실 그 도전이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온/오프 교차 경험이라는 차별적인 요소,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점유율을 등에 업고 많은 브랜드들에게 강한 교섭력을 지닌 1위 플랫폼, 올리브영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이번의 경험은 올리브영을 잘 이용하는 고객에게도 흔하지 않은, 아주 극단적인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꽤 많은 유저들이 경험하고 있고, 경험해 왔던 일이라면? 뷰티컬리의 도전은 물론이고,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 역시도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쿠팡은 '배송'이라는 독보적인 가치로 결국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온라인 쇼핑의 판도를 바꿨다. 뷰티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종사자이자 고관여 유저 입장에서 뷰티 영역에서의 판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가 된다. 내 의지로는 절대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또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면 올리브영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를 놀라게 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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