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글 쓰는 사람이 친구와 함께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시작한 어떤 도전에 대해 누군가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늘 간단하다. 해보고 싶고, 재밌어 보여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나 자신을 설명할 더 많은 해시태그와 나만의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 때문이라고 답한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도 더 다가갈 수 있는 도전이니까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의 도전들은 대부분 이런 방향들을 고려한 전략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하고 싶다, 재밌을 것 같다는 것보다 강한 이유가 있을까. 의미 있어 보이는 이런저런 설명들은 사실 도전을 선택한 과거의 내 마음을 그럴듯하게 해석하기 위해 덧붙인 말에 불과하다.
매년 그렇듯이 친구들과 지난 한 해를 함께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계획하는 연례행사에서 팟캐스트 이야기가 나왔다. 술기운과 함께 '팟캐스트 해볼까?' '오 좋아, 안 그래도 해보고 싶었어' 같은 대화가 오가고, 다음 날 극심한 숙취 가운데에도 기어이 올해 함께 한번 팟캐스트를 시작해 보자고 약속했다.
첫 녹음을 며칠 앞두고 교외에 나갈 일정이 있어 이동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기억은 부모님의 영향을 떠나 (교수, 변호사 같이 받아쓰기로 써냈던 것들) 처음으로 나 스스로 생각했던 장래희망이었다. 당시에 라디오 작가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순수>를 재밌게 봤는데, 원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으로 라디오 작가를 마음에 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방송작가나 시나리오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라디오 작가는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진학을 위해 공부하던 학생 때엔 밤마다 라디오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시간대, 주파수별로 DJ와 프로그램을 빠삭하게 알았다. 특히 6시부터 10시까지의 프로그램은 거의 놓치지 않고 매일 들었다.
라디오에서 특히 매력적인 순간은 온전히 DJ의 목소리와 메시지로 채워지는 오프닝 멘트였다. 사실 으레 하는 인사말이지만 깊은 인상을 주는, 때로 메모하고 싶은 이야기로 채워지는 오프닝 멘트가 늘 기대됐다. 그리고 그 오프닝 멘트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첫 선곡을 기대하는 재미도.
사실 팟캐스트를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그 후로도 대여섯 번은 바뀌었던 장래희망이니까, 사실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언제 다시 기억할 수 있었을까도 알 수 없다. 오랜만에 듣게 된 라디오가 너무 오래 지나서 나조차 잊었던 꿈을 생각나게 해 준 셈이다. 라디오 작가인 동시에 DJ가 되기도 하는 (저작권 문제로 음악을 틀 수는 없지만) 경험을 팟캐스트로 할 수 있게 된다니.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어쩌면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꿈을 이루는 것 아닌가. 첫 녹음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충분히 도전을 끝낸 것처럼 설렜다.
콘셉트와 주제, 콘텐츠 구성 방식을 논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문자와 음성, 전달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책과 팟캐스트는 조금 닮았다. 독립출판으로 첫 책을 기획하던 때와 비슷한 고민들이 이어졌고, 결정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무엇보다 홀로 온전히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하는 1인 출판과 다르게, 함께 논의해서 우리의 콘텐츠를 완성해 가는 것 가장 큰 차이였다. 제목, 썸네일, 오프닝과 클로징 메시지나 BGM 같은 것들까지, 역할은 나뉘어 있지만 함께 완성해야 한다. 첫 독립출판 이후에 공동 작업으로 출판물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출판 이전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먼저 시작하게 된 셈이다. 종이 한 장이든 큰 무게의 책이든 함께 들면, 반드시 더 가볍다.
텍스트가 익숙한 나지만, 글쓰기 대신 말하기로 내 이야기와 생각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팟캐스트는 나에게 또 다른 '처음'이지만 사실 그 앞의 도전들이 없었다면 선뜻 시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콤플렉스라고 여겼던 내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영향이 크다. 결국 지나간 처음들, 낯선 새로움의 경험들이 지금의 새로움을 만나게 해 준 셈이다.
나의 처음이 또 다른 처음을 만들어주는 경험. 낯설지 않다. 첫 독립출판으로 책을 출판한 이후, 첫 북페어를 갔을 때도 또 다른 처음을 만났으니까. 그뿐일까. '작가님'이라는 또 다른 직업과 명함을 갖게 된 것도 처음, 내가 쓴 이야기로 웹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도 처음, 내가 쓴 책을 소개한 유튜브도, 팟캐스트도 모두 당연히 처음이었다.
어떤 처음은 그 하나로 끝난다. 하지만 어떤 처음은 끝없이 또 다른 처음을 부른다. 나는 최근에 이상하리만큼 일상에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마주하게 되었는데, 첫사랑 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첫사랑 상대와는 하나하나의 일상이 모두 처음일 테니까. 내게는 첫 출판작품이 첫사랑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큰 '처음'이었고, 이제 10회 차를 넘어 일상으로 자리 잡은 팟캐스트라는 도전도 이후에는 첫 출판작만큼 파급력이 큰 '처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이미 30년 가까이 오랜 꿈에 살짝 터치한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큰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팟캐스트, <토크토랑>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찾아오는 토크 레스토랑으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지난 한 주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기대로 마주하기를 꿈꾼다. 매일이 기대되는 삶의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매주 토크토랑을 채워가는 이유다. 월요일을 앞두고 지치고 피곤한 일요일 저녁이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의 방법을 발견하는 시간. 어쩌면 토크토랑은 이걸 꾸려가는 우리에게 더 큰 에너지와 좋은 삶의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처음'이 그랬듯이, 새롭고 즐거운 것만큼 내일과 매일을 기대하게 하는 건 없을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우리 목소리를 실어 보낸다. 이번 일요일에도, On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