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사이드 스토리
점심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가슴 중앙에 뭐가 얹힌 불길한 느낌이 든다면? 그 날도 편두통이 찾아오는 날이다. 회사라는 걸 다니기 시작하면서 편두통을 알게 됐다. 신경을 지나치게 많이 쓴 날이면 어느 순간부터 머리 군데군데가 지끈거렸다. 그런 날엔 점심을 먹으면 꼭 얹힌 것 같았고 몸 전체에 순환이 안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잠시 떼어놓고 싶어지는 끔찍한 두통이 찾아왔다.
편두통. 편두통 때문이었다. 회사를 퇴사한 강력한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편두통이 나의 처음과 마지막의 퇴사심을 결정지은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편두통은 회사생활은 물론이고 일상까지 어그러트렸다. 일단 두통이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이부프로펜이나 덱시부프로펜이 함유된 약을 먹고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엔. 약을 먹지 않고 버텨보자고 결심한 어느 날엔 집에 가서 약을 찾다가 기절한 적도 있다. 그날 새벽에 번쩍하고 눈을 떴는데 머리가 맑고 깨끗해서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 편두통만 없어도 참 '살 것 같구나.' 좀 사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주 대단한 회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가진 것도 많이 없었다. 중소기업의 7년차 연봉... 그게 전부였다. 놓기가 어찌나 쉽던지,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쥐고 있는게 적으니 놓기도 참 쉬웠다.
퇴사를 결심하자마자 바로 회사 사람들, 팀장, 대표에게 공유했다. 회사도 나를 떠나보낼 준비를 천천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나는 전에 다니던 회사에 깊은 애정, 애증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퇴사한다고 말하고 1년 반을 더 다녔다. 나도 참 나고, 회사도 참 회사지만... 일에 애정이 컸으니깐. 거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어서 나는 내 공백에 대처할 시간을 상호간에 천천히 가지길 바랐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에겐 그런 마무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내 일이었고, 내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착실하고 성실하게 퇴사를 준비했다. 인수인계할 사람을 직접 면접보고, 자료를 준비하고 필요한 허가 신청도 모두 끝내고 굿바이를 한 셈이니. 내가 할 일을 차근차근 다 해놓고 떠난 셈이다. 이건 내 인생에서도 참 중요한 경험이었는데, 성실한 굿바이를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해도 된다, 정말... 회사란 곳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곳이어야 한다.)
서울 자취방에서도 짐을 뺐고 당분간 인천집에서 살면서 통근에 5시간 이상을 버리며 살기를 3개월.
퇴사날까지 인수인계로 야근을 하고 부랴부랴 버스를 탔는데, 그 마음이 어찌나 상쾌하던지! 퇴사하는 날에 맞춰 나는 이사까지 끝냈다.
바로 남도의 시골 마을로. 퇴사와 더불어 서울 상왕십리를 떠난거다! 어찌나 통쾌한지! 짝꿍이 연차를 내고 나를 데리고 왔고, 우린 작은 차를 타고 300km를 넘게 달렸다. 가는 내내 내 마음은 그저 온전한 기쁨 뿐이었다. 회사생활이 끝나다니. 내가 결국 끝내다니!
(퇴사와 맞춰 시골로 이사한 이야기, 이건 또 다음 화에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