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사이드 웨딩 스토리
* 이 글은 2022년 10월 1일에 작성되었습니다.
결혼식 일주일 전이다. 나는 10월 8일에 결혼한다. (준비할 게 산더미인데 글부터 쓰는 나도 참 나다.)
그래서 어제는 머리를 자르러 시내에 갔다. 애인이 좋아하는 곳. 여자 사장님의 샴푸가 기가 막힌 곳. 머리를 참 잘 자르는 곳.
머리는 똑 단발로 짧게 자를 생각이었다. 이때 자르기 위해 일부러 기르고 있었다. 짧고 상큼한 단발이 그나마 내게 잘 어울리는 머리라고 생각했기에.
"안돼죠!"
단발로 잘라달라는 내 말에 원장님의 외마디 비명. 키크고 늘씬한 모델같은 사람이야 괜찮겠지만... 이라고 작게 말하면서 머리도 스타일을 도와줘야 하는 거라며 드레스 스타일을 물어보셨다. 진정한 프로인 선생님은 당일에 드라이로 자유로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게끔 깔끔하게 정리만 해주셨다. 결과적으로 기장은 그대로...
짧고 상큼한 단발을 원했던 나는 조금은 낙담했다. 목소리도 작게 나오더라. 그냥 자르고 싶었는데... 괜찮다고 그냥 잘라달라고 더 모질게 말하지 못하는 내게도 실망했다.
'망해도 내가 망해요!' 왜 결혼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운걸까.
원장님은 머리는 금새 자르시고, 이제 드라이와 고데기를 시작했다. 이게 머리 자르는 시간보다 더 걸렸는데 두 분이서 혼신의 힘으로 셋팅해주셨기 때문.
고데기를 하시면서는 드레스를 입을 거면, 밤색 정도의 연한 머리톤이 잘 어울린다며 염색을 권하셨으나, 나는 염색만 하면 피부가 뒤집어지는 숱한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검은 머리는 안 어울리긴 하는데..."
드레스는 서양에서 온 것이고, 나는 한국인이니 당연히 머리카락 색깔도 서양의 색깔로 해야 더 어울리긴 할테다. 나는 생머리인데, 드레스는 서양에서 온 것이니 서양의 웨이브가 어울리긴 할 것이고. 나는 그런 생각에 조금 울적해졌다. 내가 울적하거나 말거나 두분은 오래된 팀워크가 빛나는 장인들의 팀작업처럼 조화로이 셋팅을 하셨다. 마치 결혼식 당일인양, 적당한 양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드라이와 고데기가 합쳐진 내 머리는 비비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엄청난 볼륨과 풍성함, 우아함. 그제야 조금은 안도하는 원장님의 얼굴...
'망해도 내가 망해요!' 왜 결혼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운걸까.
아마 이 얼굴 때문이지 않을까? 절대 이 사람을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어떤 책임감이 느껴지는 얼굴. 그게 누군가를 아끼고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얼굴이라는 걸 알기에, 나도 같이 망하겐 하지 말자-는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결혼식에 신부가 최대한 아름다워보이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도저히 이 사람이 원하는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는 마음. 이 사람이 이 사람의 것을 망치게 둘 수 없다는 안절부절함.
상복같은 면 원피스는 절대 안된다고 카톡에서 매일 나를 들들 볶고, 신발부터 머리장식, 드레스까지 링크를 보내며 구매하라고 체크한 친구들.(그들은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자신의 셀프 웨딩 노하우를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줬던 새언니.
모바일 청첩장에 넣을 사진을 찍을 때 부케가 없는 내게 들꽃을 뜯어 부케를 만들어주며 웨딩스냅을 찍어준 친구.
직접 백화점에 가서 옷을 입어 사진을 보내며 이건 어떠냐고 대리 쇼핑해준 엄마.
내 결혼식이지만 내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의아하다가,
이런 마음을 마주치면 나는 그들의 어떤 프로의식, 애정과 에너지에 결국 탄복하게 된다.
누군가 더 빛나길 바라는 마음, 아무리 프리 웨딩이라지만 너무 이상하지많은 않길 바라는 마음(내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장 크게 갖는 마음이리라).
그들의 안타까움이 안도감으로 변하는 그 마음을 나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비판하고 저항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이제 애인의 차례. 이게 전문가의 손길인가. 분명 같은 얼굴인데 갑자기 이렇게 잘생겨져 보인다니!
원장님이 만져준 애인의 머리에 탄복한다.
"와 이거다 이거!"
애인은 갑자기 훤칠해져서 웃고, 나는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이...이거구나, 훨씬 멋지네.
원장님은 우리 둘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다.
원장님의 컷팅에 수긍하며 기분 좋게 집에 간 나는 그 책임감으로 저녁을 굶고 잤다. 그래, 조금이라도 붓기를 빼자.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신부다운 모습을 보여주자. 결혼식을 하기로 한 이상 내게 어떤 책임이 생긴 듯하다. 망하지 않을 책임.
망해도 내가 망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속상하게 만드는 건 나도 마음에 걸린다.
확 실망시키고 싶고, 완전히 제 멋대로 하고 싶다가도 머뭇거리는 나.
내 것이지만 내 것만은 아닌 것, 그게 나 자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