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2025년 5월 19일.
751호 병실. 간병인 외에 외부인 면회가 안 된다는데 하늘의 뜻이었던 거 같다. 출입문이 열리고 복도에 들어선 순간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친구의 이름을 발견한 병실 앞에 섰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창가 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커튼을 제치자 친구는 눈을 감은 채 힘없이 누워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뜨려고 애쓰면서 힘겹게 호흡하며 물었다.
"어떻게 온 거야? 출근은?"
"보고 싶어서 무작정 왔어. 얼마 전까지도 통화했었잖아, 우리."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앙상한 뼈와 움푹 파인 볼을 쓰다듬었다. 나는 다짐했다. 친구 앞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행복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다.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었다.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이며 친구가 물을 달라고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두 모금 정도 마실 수 있는 물을 따랐다. 친구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침대 버튼을 눌러 살짝 올리더니 머리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곤 아주 천천히 물을 마셨다. 기운을 차리고 싶은 의지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전해져 울컥했다.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데도 애쓰는 모습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답답한 거부감을 만져달라고 했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친구가 다시 눕자, 체온 유지를 위해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무거운 눈꺼풀 사이에서 잠깐잠깐 마주친 맑고 깨끗한 친구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우리 울지 말고 웃자."
나는 마스크를 내리고 익살스럽게 웃는 표정을 보여줬다. 친구가 웃었다. 주름 사이를 뚫고 나온 하얀 미소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힘겨운 호흡 속에 피어난 친구의 마지막 그 미소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친구가 부탁했다. 허벅지와 종아리 마사지를 해 달라고. 나의 손끝을 느끼고 싶은 모양이었다. 앙상한 다리를 만지면 부러질까 싶어 이불 위로 조심조심 만져주었다. 마치 손끝 체온이 전달이라도 되는 듯 평온해 보였다.
친구가 떨린 목소리로 기도 부탁을 하자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친구의 가슴에 손을 얹고 무서움과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그저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또렷하게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병명을 진단받을 때부터 한 번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내느라 고생했다고.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수고했으니 좀 쉬어도 좋다고.
어쩌면 마지막 기도가 되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지만,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의 모습이 생각보다 평온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친구의 마지막 눈빛을 볼 수 있어서, 그 미소를 볼 수 있어서, 기도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또 오겠다며 일어서는데 친구가 눈을 번쩍 떴다. 나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슬픈 눈빛이 시리도록 아프게 파고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마지막까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제는 눈을 감아도 되겠다는 친구의 얼굴 표정과 안심의 눈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애절한 그 눈빛을 뒤로하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 밖에서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평소 같으면 창문 밖으로 손이라도 흔들어줬을 텐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생각이 정지된 듯 멍한 상태로 한참 동안 7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날따라 바람이 좀 세게 불었다.
다음 날. 친구가 죽었다. 췌장암 말기로 27번의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천국으로 가버린 친구. 부고를 받고 그제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신경 써 줄걸. 미안하고 안쓰러워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나도 잘 안다. 친구의 힘들었던 투병 과정을. 혼자 알아서 관리하던 아픈 날들을. 병원에도 혼자 택시 타고 가서 2박 3일 주사를 맞았다. 체념한 듯하면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친구.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와 따듯한 밥 한 끼 사준게 전부였다. 이제 사랑하는 친구와 영영 이별을 하지만, 친구의 평온했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사실 그때 예감했다. 어쩌면 어쩌면 친구의 내일은 오지 않을 거 같은 불길한 예감. 불길한 예감은 기분 나쁠 정도로 잘 맞았다.
7년 지기의 친구는 2019년 5월 21일 일본 오키나와 여행 중에 만났다. 그날 이후 유독 봄을 좋아한 친구와 매년 봄맞이 여행을 같이 다녔다. 벚꽃이 지고 노란 장미가 필 무렵이면 무언의 약속처럼 떠났는데. 대화 코드가 맞은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고 둘이서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의 만남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어쩌자고 천국 여행을 그리 빨리 떠났는지. 미처 하지 못한 우리의 이야기,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참으로 행복했다는 내용을 카톡에 남겼는데 언제쯤 확인이 될까. 덩그러니 남은 숫자 1 그리고 이별이 아직 낯설다. 지하의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모든 시간이 깜깜하고 우울하다. 남은 삶 너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염치없지만 그런데도 웃어야 산다는 것을... 나 잘 살아낼게. 안녕, 친구야. 통증 없는 곳에서 편히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