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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Jun 08. 2023

불편하게 살기

재미없는 인생 살 맛 나게 사는 법

나도 몰랐는데, 난 평생 편하게만 살고 싶었나보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대개 '편해 보이는 직업'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연예인, 백화점 사장, 발명가, 심지어 정치인...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누가 대통령,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치인이 꿈이라 하는가 이 말이다.

남들이 '저 정치하는 세금 도둑놈들!' 할 때, 고등학생의 나는 '오~ 그렇게 꿀 빠는 거라면 내가 하면 딱 좋겠다.'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나는 이렇게 대우받으면서도, 편해 보이는 일명 '꿀 빠는' 직업만 장래희망으로 삼았다.


취업준비를 할 때에도, 내 닉네임은 'honeybee', 즉, 꿀 빠는 꿀벌이 되고 싶었다. 그만큼 난 오랫동안 딱히 꿈도 목표도 없이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던 철부지였다.


그런 바람 때문일까, 나는 어린 시절 꽤나 꿀을 잘 빨고 살았다.


학교에선 꽤 자주 글쓰기 대회를 열었는데, 왜일지 항상 열심히 써낸 글보다 대충 써낸 글이 상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과제도 대충 했을 때 성적이 좋았으며, 짝사랑도 애달프지 않았을 때 성공했다. 취업마저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회사는 떨어지고 대충 준비한 회사에 합격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린 나는 '열심히'보다 '대충'하는 것의 가치를 깨달아 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이룬 것들은 많아도, 내게 소중한 것은 없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얻은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한 순간도 있지만,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해 성취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은 삶에 치명적인 오점이다.


무언가에 오래도록, 끝까지 집중하고, 마침내 해내는 경험.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악착같음이 내겐 없다.


편하고 쉽게만 살다 보니, 오히려 조금 해보고 안되면 그만하는 습관, 불필요할지 모르는 노력은 그만두는 습관만 들었다.

게다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충 해도 비슷한데 뭘 저렇게까지 하나...' 하는 거만한 생각을 한다.


퇴사를 한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회사 열심히 다녀봤자 남는 게 뭐라고.' 하며, 마치 나는 옳은 길로 달려 나가는 것 마냥, 성실한 직장인들을 내려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간적 자유'를 얻고, '제대로 꿀 빨며' 시간을 보내보니, 인생을 편하게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

매일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만, 마음속 공허함이 가시질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삶은 두렵고, 불안하다.


결국 문제는 편한 길만 가려하는 나의 오만한 자세인 것 같다. '진짜 내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뭔 지 부딪히고 도전해 보기보단, '무엇이 더 편하고 빠를까?', '어떻게 해야 덜 일하고 많이 벌까?', '이건 이래서 저래서 힘들겠지.' 하는 잔머리만 굴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제일 편한 건 역시 집에 가만히 드러누워 유튜브나 보는 것이다. 돈도 안 들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

결국 내 잔머리의 끝은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된다. 지름길을 찾는다고 그게 지름길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잔머리를 굴린다.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편하면서도 멋있는, 그러면서도 인정받으면서 돈까지 잘 버는 그런 환상 같은 일은 대충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내겐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만큼 오래도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 없다. 처음엔 그 호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그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그녀가 그 자리에 가기까지의 노력은 고작 '피, 땀, 눈물'이라는 말로 짧게 설명되어 마치 그냥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 직접 겪어보라 하면 줄행랑치고 말 것이다. '이 고생을 할 바엔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 하면서.


노력하고 감내한 시간만큼 아름답고 멋진 게 사람인 것이다. 대충 해서는 편할 순 있어도 아름다울 순 없다. 요행을 바라서는 스스로를 빛낼 수 없다. 쉬운 게임이 재미가 없듯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편하게 방구석에서 삶을 그저 '편하게 살아내는' 사람이고 싶은가? 그도 아니면 나를 갈고닦아 결국 내 삶을 '스스로 빛내는' 사람이고 싶은가?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빛나는 나를 내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다. 삶을 대충 살지 않고, 성취하면서, 사는 맛이 나게, 재밌게 살고 싶다. 다만 그 과정을 생각하니 그냥 불편하고 힘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쉬운 길을 가려고 잔머리를 굴리기보단, 힘들고 불편하고 걱정스러워도, 그것을 감내해서 얻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는 맛'이 난다는 걸, 사람들이 악착같이 살아내는 데엔 다 그들만의 빛나는 목표가 있다는 걸, 이젠 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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