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는 최소한 어리고 못난 모습을 들키지 않고 잘 지냈던 것 같다.
누가 신경을 건드려도 노여워하기보다는 그러려니 웃으며 넘어갔으며, 껄끄러운 사람에게 등지기보다는 적당히 선을 그어두길 택했다. 일이 꼬여 골치 아파져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서 끝까지 해결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 수많은 부끄러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참 예민하고, 회피적인 사람이었다. 갈등이 생기려고 하면 도망치거나, 짜증을 냈다.
학창 시절, 친구와 사귀었던 남자애가 나에게 고백했을 때, 나는 그 남자애를 피하고, 죽어라 미워했다. 사실은 나도 꽤나 관심이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친구가 알면 서로 힘들어질까 봐 그 애가 고백했단 사실을 숨기느라 오랫동안 애를 먹었다.
대학교 서포터즈로 일할 때, 팀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혼자서 일을 다 하고는 '이 정도 퀄리티밖에 못하느냐. 혼자 할 거면 똑바로 하든가'하는 교직원의 피드백에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울었다.
그래놓고는 수업 발표준비를 하느라 팀 선배들이 꼬박 밤을 새울 때, 꿀잠을 자느라 연락이 되지 않은 나는 민망함에 죄송하단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선배들을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에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가곤 했다.
그런 날들은 꼭 나의 흑역사가 되어 여러 밤 나를 괴롭혔다. 찌질했던 나의 태도들이 참을 수 없이 힘들어질 때, 나는 그것들을 잊는 편을 택했다. '지금의 나는 그 사람이 아냐. 지금은 쿨하고 털털한 척하면 돼.' 하면서.
그렇게 제법 마음에 드는 내가 되었지만, 지난 과거사진을 꺼내볼 때면 여전히 그 과거에 부끄러움이 차오른다. '그렇게 찌질했으면서, 뭐가 저렇게 해맑고 좋을까.' 하는 생각에 화장기 없는 얼굴과 어설픈 옷차림을 고쳐주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런 과거들이 쌓였기에 지금의 찌질하지 않은 내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들을 묻고 숨기기만 할까. 오히려 별 것 아닌 일에 숨고 도망쳤다가 죽어라 후회했던 지난날들이 지금 어엿하게 1인분 하는 나를 만들지 않았나.
이제는 그때의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왜 그랬는지 이해해주고 싶다. 어리고 서툴렀던 나를, 나 하나라도 예뻐하고 귀여워해주고 싶다. 여전히 어리고 서투른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