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아하기만' 하는 일이 있을까? '해야 하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품어야 할 단점이 있듯, 좋아하는 일에도 그에 따르는 대가가 있는 법.
2.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마음이 급해도 조금 더 기다리는 마음. 가슴 한켠의 불안을 외면하는 마음. 내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인내심이었다.
3. 인내란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는 일이다. 인내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외면해야 한다. 현재에 있어야 할 일이 아닌 것들은 과거든 미래든 미뤄두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와 계획이 절실했다.
4.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우선순위가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직급이 높든 낮든, 일이 급하든 안 급하든 차이를 두지 않고 살았다.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공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중요한 일을 먼저 해결하는 계획력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모두에게 공정하게 대하지 못하는 세상을 삐뚤어졌다며 미워하기 급급했다.
5. 어렵지만 이제라도 우선순위를 따지고 공정함을 포기해 본다. 완벽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며 완벽하지 못한 세상도 인정해보려 한다. 양쪽이 아닌 한쪽의 편을 들어본다. 직급에 따라 다르게 대해 본다.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는 미뤄본다.
그러자니 세상과 타협하는 것만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그렇게 외치면서도, 실은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처럼 되어가는 내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7. 하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할 나이. 어려서야 나이가 대수냐며 호기롭게 퇴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무뎌지는 몸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자꾸 되뇌게 된다.
반짝이는 것보다, 공정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생겨버린 것이다.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얼마나 쓴 맛을 견디며 삶을 이겨내고 있었는 지를 알게 된 것이다.
9. 그러므로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는다. 마음 편한 하루를 위해서 평범하게 되기를 선택하고, 인내심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공정에 대한 강박적 사고를 버린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외면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정하고 기꺼이 포기한다.
10. 인생이란 이렇게 하루하루 포기해 나가는 것. 내일은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