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입원
조금 편하게 사는 줄 알았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고 큰딸은 2년제 대학을 나와 태권도 사범으로 일할 당시였다. 대학을 더 다나길 바랬지만 딸은 더 다니고 싶지 않아 바로 취직을 했다. 작은 딸은 경산에서 대학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대학 가고 처음 집에 온 날 큰 일이 일어났다.
딸은 미리 약속을 하고 올라온 것이다. 대학 입시 준비생때 만난 친구들과 만나기로 정한 것이다.
하필 그날이 남편의 외사촌 형의 딸 결혼식이 있는 상태였다. 모두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다 딸이 약속이 있다고 하니 버럭 성질을 내는 것이다. 집안 행사가 먼저지 친구와의 약속이 중요하냐고 따지듯이 하더니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던지며 난리를 피우니 나는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병이 다시 시작되었다.
쇼파에서 떨어지고 난리가 난 것이다. 성질을 더 내면서 딸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었다.너 때문에 엄마가 아픈거야 한 것이다. 니가 알아서 해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먼 친척인데 굳이 내가 아프면 혼자가도 되련만 굳이 성질까지 내면서 가야 하냐고.
딸은 울면서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눕혔다. 그리고 서럽게 우는 아이를 달래긴 커녕 운다고 또 난리를 피었다.
결국에 큰딸은 그날 라섹수술을 하고 결혼식장에 가고 딸은 친구와의 약속에 갔다.
병은 급속도로 나빠져서 3월14일에 이번에는 암병동에 입원을 했다. 아주 멀쩡해서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병실에 있으면서 옆에 계시는 분들과 친해져서 잘 지냈다. 매일 운동을 하며 지내다 보니 다른 병실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더 깊어진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는 약물요법을 통해 내면을 알아보는 검사를 했다. 수면제 주사를 놓고 램 수면 상태에서 질문을 하면 나는 잠꼬대처럼 대답을 하는 형태로 내면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2번의 검사로 통해 밝혀진 것은 다 말해 주지 않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 상처라고만 말해주었다.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아직도 모른다.
약을 바꾸며 조절해서 증상이 없기를 1주일 이상이 되면 퇴원을 했다.
5월6일에 퇴원했다. 내가 퇴원한 사이 시어머니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홍콩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했다. 대단한 시어머니 아닌가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큰 딸에게만 여행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해서 딸은 입을 다물고 있어서 집안이 난리가 났었다고 퇴원하니 말하는 것이다.
2번째 암병동에 있으면서 삶과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