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다정이란 무얼까
오늘부로 마지막 근무를 마친 그녀에게 동료들은 저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 자주 놀러 와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돼요?
그들의 인사를 멀찍이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던 사이에는 어떤 인사가 적당할까. 지금 와서 친한 척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너무 다가가면 상대가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지막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치면...
결국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그녀 앞에 선다. 멋쩍은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넨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어설픈 형태의 단어와 행동을 모아서.
- 다음에 또 봬요.
뒤이어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눈알만 굴리다, 이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조심히 들어가세요'로 겨우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간다.
적당한 다정이란 무얼까.
연락이 뜸했던 이에게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며 안부를 묻는 일. 또는 오랜만의 안부 인사가 상대에게 혹여 부담으로 다가갈까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일. 상대의 기분을 살피다 말을 걸지 않는 일. 혹은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말을 거는 일. 그 외에도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다정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차승원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표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보다 직관적으로 와닿는 설명이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다정과 오지랖의 차이에 대해서는 도무지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나의 다정이 오지랖으로 닿지는 않았을까, 때론 누군가의 다정을 내가 오지랖으로 오역했던 건 아닐까 겁도 난다.
오지랖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오늘날에도 종종 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중
다정으로 출발했지만 오지랖으로 끝나게 될 어떤 말의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이내 말을 아낀다.
결국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절반도 꺼내지 못한 채 상대를 떠나보내게 될 때마다 나는 늘 적당한 다정에 대해 생각한다. 짜증 나게도 내 삶은 매번 이런 식이다. 작별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서야 그간 상대와 내 관계를 돌이켜 보는.
삶에서 모자라지도, 아주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상태를 찾는 건 늘 힘이 드는 일이라 매일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삶 속에서 나는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무색무취의 존재가 되길 바랐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조금이나마 내가 기대를 품었던 타인에게 실망하기도 싫었으니까.
그 사이 내 마음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타인을 품을 옷자락을 스스로 검열하고 재단하는 일. 다정과 오지랖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아직까지도 내게 너무 어려워서, 오늘도 나는 ‘적당한 다정’ 앞에서 길을 잃고 만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