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2023)
소설 <작은 빛을 따라서> 속 은동은 배우의 꿈을 꾸는 학생이다. 꿈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 은동은 시내에 위치한 배우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착실하고 성실하게 수강료를 모은다.
하지만 배우라는 꿈에 다가가기 위해 찾아간 아카데미 오디션에서 은동은 원장으로부터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오랫동안 꿈꿔온 은동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음속에서 은동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개나 소나'라는 모욕 앞에서 나는 내가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지난겨울 꿈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한 건 내가 나에게 한 오해였다.
“여기에 선택되지 않은 사람 중 연기하는 사람도 있겠죠? (…) 연기를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쵸?”-
배우가 되고자 했던 꿈은 원장의 '재능 없음'이라는 말로 무너져 내렸을지언정, 은동은 그 폐허 속에서 정말로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한다. 대체 '하고 싶은 마음'이 뭐길래, 되고 싶은 마음이 박살 났음에도 은동이 저리도 눈을 반짝일 수 있던 걸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하다'와 '되다'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어느 독립영화감독을 인터뷰할 때다. 보통은 영화를 하고 싶으면 시험 쳐서 영화과 진학부터 하던데 당신은 무슨 배짱으로 덜컥 월세 보증금 빼서 영화부터 찍었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영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거겠죠. 하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되고 싶어 하니까 문제인 거예요. 성공한 누군가를 동경하면서요."
(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되다'는 수동, '하다'는 능동태다. 기본적으로 수동의 경우 주어가 스스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힘으로 되어진 것을 말한다. 따라서 수동태에 있어 중요한 건, 주어인 '나'가 아니다. 나를 무언가가 될 수 있게 만든 '다른 누군가의 힘'이 절대적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까지 괴로움을 느꼈던 건 항상 무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하고 싶다'의 마음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하고 싶다를 넘어 무언가가 '되어야지'만 나의 마음을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남들의 인정이 절실했다. 혼자 품은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나의 절실함을 증명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되고 싶은 마음'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가 정해놓은 목표, 그 기준치에 다다르지 못하면 효용가치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 무언가가 되지 못한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었던 과거의 마음까지 미워하고 후회하면서 스스로를 궁지에 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인생은 우릴 절망 속으로만 빠지게 놔두지 않는다. 나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데이터를 조합해 보면 그랬다. 인생은 참 요상하게도 질긴 구석이 있다. 내가 먼저 손을 놓지 않는 한, 끊어질 듯 결코 끊어지는 법이 없다.
한 움큼 쥔 건빵을 입에 가득 문 듯, 목이 막히고 퍽퍽하던 삶 속에서 내게 찾아오던 별사탕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어쩌면 빛나는 재능 따윈 내게 처음부터 없던 거라고, 이제는 정말 그만두어야겠다고 은동처럼 남몰래 품어온 꿈을 포기하려던 순간에도, 소소하게는 당시에 맡은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별생각 없이 응모했던 사연이 당첨되는 식으로 당장의 오늘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사건들이 찾아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내 안에서는 어떠한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오늘 하루가 정말 힘들었을지라도, 쨍하고 해 뜰 날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내가 견딜 수 있게 희미한 볕이 들 사건이 잊지 않고 날 찾아와 줄 거라고.
내게 주어진 삶이 버거워질 때면 이제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소소하지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지금의 나를 또 지탱해 줄 테니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 하루만 더 견뎌보자고 말이다.
간당간당. 엄마의 입에서 최근에 많이 나온 단어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간당간당... 간당간당. 위태로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울리는 종소리.
간당간당, 네 글자를 입 안에서 굴려본다. 필성슈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던 은동의 가족처럼 아주 잘 되진 않아도 간당간당하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주어진 일들을 바라보며 삶에 대해 생각한다. 간당간당... 튼튼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심을 잡지 못해 자주 휘청이는 나에게 어찌나 위로와 안심이 되던지.
무엇보다 엄마의 이 말이 나를 안심시켜 줬다. '우리는 망한 적이 없다는 말.'
그리고, 그 순간에는 망했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수습할 기회는 항상 찾아왔다. 수습한다면 그건 더 이상 망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견디는 것도 수습의 일종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까지 망해본 적이 없다. 망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조차 이렇게 지나왔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되지 못해 전전긍긍해하던 어제의 나도, 이러다 진짜 내 인생 망하는 거 아니냐며 머리를 쥐어뜯던 과거의 나도 '우리는 망한 적이 없다'는 소설 속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륵 풀린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실패의 순간에 도사리는 성공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소설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마치 배우의 꿈이 무너져 내린 듯한 순간 속에서 되려 은동이 연기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깨닫게 되었듯 말이다.
"나쁜 단어도 써야 해요. 그래야 글이 완성되거든요."
삶이라는 공책 속, 어느 페이지에는 수없이 나쁜 단어와 문장들로 가득 찬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해당 페이지를 박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고, 그 부분을 지우개로 애써 지워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종이 위에 깊게 새겨진 자국까지는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써내려 가야 한다. 별사탕 같은 사건이 나를 잊지 않도록, 우릴 찾아 헤매기 전에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 성장하며 변모한다. 이를 종종 잊기에 나는 이야기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