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옛날이야기를 해줄까? 나는 어렸을 때, 욕도 잘했고 누구를 괴롭히지 않았고 밖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들고 애들이랑 노는 아이였어. 왜 욕을 잘했는지, 그 시절에 어떤 사건이 있는지 명확하게 못 말해주지만 그런 아이였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엔 엄마 손을 잡고 갔지만 다음날엔 혼자 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지. 결국엔 육교 계단이 무서워서 옆에 봉을 붙잡고 내려와서 손이 다 까매졌어. 나는 그런 아이였어. 아, 남들의 악을 잘 몰랐어. 이게 괴롭히는 건지 장난인 건지. 내가 누군가를 괴롭힐 수 없었어. 있어도 결국엔 내가 졌어. 매번 사과하고 지금도 모든 것들이 다 내 잘못 같아. 여전히 나는 지고 있어. 나는 그런 아이였어. 아주 예민하고 세상이 더럽다는 것을 빠르게 체득한 아이. 그러고 싶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 알려줬어. 나도 그 시절에 왜 그렇게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발버둥을 친 것 같아. 사설이 길었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소설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야 했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이야.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예민한 아이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어. 마치 나의 시선 같았거든, 젤리들이 가득한 학교, 아이들, 매일 어쩌면 전쟁 같은 사건이. 원래는 학교에 관한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해맑게 웃으면서 읽었어. 어쩌면 그 시절이 가장 많이 생각난 소설일지도 몰라. 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경쾌한 리듬감이 느껴져서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지. 아,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장르를 바꾸면 됐구나. 「가로등 아래 김강선」에서 강선이가 은영이에게 해줬던 말처럼.
「원어민 교사 매켄지」에서 유정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왔어. 그리고 은영이의 친절함도 더 잘 알 수 있었지.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 어떻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 잘 정의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거지? 감탄하며 읽었어.
안은영은 툴툴대면서도 친절한 사람이야. 암흑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지. 사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내가 좋았던 점은 자기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점이 좋았어.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런 삶을 살까. 한탄은 할 수 있어도 연민을 하지 않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내는 사람이잖아. 너무나도 멋지지 않니?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어.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젤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어떤 한 물건을 보면 그 물건에 대한 사건이 생각이 나고 뭉게뭉게 더 커져서 깊은 내면으로 가니까. 이게 젤리가 아닐까 싶기도 해. 나도 안은영처럼 살 거야. 젤리들을 물리치고 열심히 내 할 일을 해내면서 말이야. 나도 친절한 사람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