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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15. 2020

아기 고양이 상경하다!

집사는 걱정덩어리

집사


 "으아아... 힘들어."

 

 내 자취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앉았다. 나와 사랑이는 막 경주에서 서울까지의 긴 여정을 마쳤다.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사랑이와 함께 이동해서 그런 걸까?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사랑이가 이동하는 동안 이동장에서 쿨쿨 잠만 잤다는 것이다. KTX역에서 집까지 택시 타는 동안 조금 운 것 빼곤, 이동하는 내내 아주 조용히 집까지 잘 와주었다. 아주 효녀, 아니 효묘다, 효묘야!

 

 정작 사랑이는 얌전히 잘 왔는데 집사인 내가 이렇게 힘이 들다니. 집사로서 다양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신력과 체력을 얼른 길러야겠다.


 "에고, 힘들다. 사랑, 이제 여기가 사랑이 집이야."


 엄마가 싸준 반찬들과 내 짐들은 일단 옆에 미뤄두었다. 그것보다 사랑이에게 맘마를 주고, 화장실 배변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사랑이의 이동장을 열어주니 사랑이는 고개만 빼꼼히 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적응을 잘해야 할 텐데.'


 일단 사랑이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이동장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저질 체력인 나는 사랑이가 잘 보이는 곳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물론 원룸이라 어디에 누워도 사랑이가 보이긴 하지만.


 몇 시간 전, 서울로 출발하기 전이 생각났다. 역시 고향에서 푹 쉬다가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마지막 날에는 엄마가 해준 밥이 최고 아니겠는가. 나는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와 포슬포슬한 계란찜에 아침밥을 먹으면서 깊은 고민에 잠겨있었다.

 

 '아, 사랑이랑 같이 올라가야 하다니...'

 사랑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처음이라 초보 집사인 나는 사소한 것도 하나하나 걱정이 됐다.

 

 '혹시 사랑이가 계속 울면 어쩌지? 내 옆 사람에 앉은 사람이 고양이 알러지가 있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랑이는 기차를 타는 것이 처음이니까 이동하면서 멀미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창의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오만가지 걱정과 문제 상황들이 마구 샘솟았다.

 

 "엄마, 사랑이랑 기차로 올라갈 생각 하니까 너무 막막한데요?"

 "다~ 잘할 수 있다. 그것도 해봐야 늘지."

 "옆에 앉은 사람이 고양이를 싫어하면 어떡해?"

 "사랑이 꺼내지 말고 그냥 이동장에 가만히 두면 되제."

 "아... 그냥 내 차 사고 싶다. 엄마 차 그냥 나한테 팔아요."

 "뭐라카노? 빨리 밥 먹고 올라갈 준비 해라."

 "아아, 걱정이다! 걱정이야!"


  밥그릇을 다 비우고 자리에 일어났다. 상상 속의 수많은 문제 상황 중에서, 내 힘을 벗어난 초자연적인 일은 접어두고, 내가 예방할 수 있는 것부터 대비해보기로 했다.

 

 우선 사랑이의 아침밥은 평소보다 일찍, 그리고 약간 적게 주었다. 이동장에 배변패드를 깔아주긴 했지만, 고양이는 본인이 안정된 상황이 아니면 대소변을 참는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음식을 먹어서 화장실도 일찍 갈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출발 직전까지 사랑이가 화장실을 가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리고 이동장의 크기도 조절했다. 만약 이동장이 고양이의 몸에 비해 너무 크다면, 심하게 흔들려서 불안함이 극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동하는 내내 고양이가 울어서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가 좋아하는 담요를 이동장에 넣어서 사랑이의 몸에 맞춰두었다.


 고양이 이동을 위한 마지막 대비책은 '열정적으로 놀아주기'이다. 이 내용은 검색해본 것이 아니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랄까. 사랑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이동장에 넣어주면, 이동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쿨쿨 잠들 것 같아서 생각해본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오만가지 장난감을 꺼내어서 놀아주기 신공을 펼쳤었다. 저릿하게 아파오는 어깨의 뻐근함은 사랑이와의 평화로운 상경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사랑이와 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출발 전에 상상했던 모든 일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걱정했던 상황들도 전혀 펼쳐지지 않았다.


 새삼 내가 사랑이와 관련된 일에 대해 너무 과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의 입양을 고민할 때도 그랬다. 수많은 상황을 가정하면서 3주간 걱정만 했던 나였다. 그리고 사랑이와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마 글 속에 담지 못한 걱정들도 한 무더기나 남았달까.

 물론 미리 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대비를 하는 것을 넘어, 마치 끔찍한 재앙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댔고, 그 결과 나는 어떻게 보면 사랑이와의 첫 기차라는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되려 내가 먼저 지쳐버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사랑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사랑이보다 내가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간다면, 집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꼴이 된다. 사랑이와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힘을 빼고, 조금은 털털해져야겠다.

 생각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그리 힘겨운 것도 아닐 것이고, 집사도 엄청난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평범하게 건강하게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지. 그렇게 함께 삶을 나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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