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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18. 2020

초보 집사와 아기 고양이의 첫날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고양이님

집사



 드디어 초보 집사의 삶이 시작됐다. 다시 제대로 해보리라 다짐했던 집사의 삶이었기에, 사랑이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감회가 새로웠다.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사는 삶은 내게 책임감을 가지게 했다.  몇 년 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고양이를 입양했다가 결국 부모님 손에 맡기는 전철을 밟 않겠다는 의지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주에서 서울까지 긴 여정을 끝내고 사랑이와 함께 내 자취방에 들어오던 첫날, 나는 사랑이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움직이는 생명체가 나와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신기했고, 사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도 영 적응이 안 됐다.  더군다나 집 한구석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는 캣타워와 고양이 장난감, 그리고 이런저런 사랑이의 물품들도 낯설었다.


“사랑아, 나만 어색하니?" 

 "고롱, 고롱…."

 "너도 낯설지? 우리 잘 지낼 수 있겠지?”

“고롱, 고롱, 고로롱….”


 사랑이는 바보 같은 나의 질문에 골골 송으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껌뻑 껌뻑 졸려하는 사랑이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평온해졌다. 사랑이는 좋은 향기가 나는 포근하고 뽀송뽀송한 담요같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사랑이를 조심조심 만지다 보니 사랑이의 입양을 고민하던 지난 3주간의 시간이 참 아쉽게 느껴졌다.

‘진작 서울로 데려올걸. 조금 더 빨리 같이 살걸.’


 사랑이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며 너무 오래 고민해서 미안하다고, 정말 잘 살아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아기 고양이와 같이 자는 밤이라 그런가, 걱정 많은 내 성격 탓에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출근할 때 사랑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장난감이 더 필요한 것 같긴 한데…. 사료를 조금 부어주고 가면 되려나? 식단은 어떻게 맞춰야 하나. 예방접종과 중성화는 어떤 병원에서 하지? 주변에 괜찮은 동물병원도 알아봐야겠다.

 

 눈은 감고 있고 몸은 피곤한데, 내 머릿속은 사랑이에 대한 생각으로 그득그득 차올랐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으으.... 무거워..."

 다음날 아침, 뭔가 작고 뾰족한 것이 내 얼굴과 목, 그리고 배를 꾹꾹 밟고 다니는 탓에 잠에서 깨어났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일단 시간부터 확인했다.


 '아니, 다섯 시라고?' 

 잠에서 깨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만약 지금 일어난다면, 하루 종일 '좀비모드' 켜 두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어젯밤에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사랑이랑 서울에서 같이 잔 기념비적인 날이었던 어젯밤,  사랑이와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느라 늦게 잔 탓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몸부림을 쳐서 작은 사랑이를 깔아뭉갤까 봐 계속 잠에서 깨서 사랑이가 무사한지 확인하느라 깊게 잠을 자지도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나를 깔아뭉개고 다니는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아, 지금은 너무 새벽 아니니? 이건 곤란해.”


 순간,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의 행동에 반응하거나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생각났다.

 사랑이와의 동거를 결정하고 난 뒤, 나는 고양이와 관련된 지식을 알려주는 수의사 선생님들의 영상 섭렵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배워서 사랑이에게 부족하지 않은 똑똑한 집사가 되고 싶었다.


 수의사 선생님의 영상에 의하면, 고양이는 굉장히 영리하기에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집사가 움직이는 순간,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한다. 만약 고양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집사를 깨웠는데, 집사가 일어나서 놀아주거나 아침 식사를 주게 된다면, 그 고양이는 앞으로 계속 집사를 깨우는 습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매일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한다...?'

 잠탱이 기질이 다분한 내게 그것은 비극이었다. 사랑이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피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꿋꿋이 눈을 감고 자는 척을 시작했다. 사랑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밟고 다녔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후, 사랑이도 다시 내 옆에 누워서 골골 송을 부르며 졸기 시작했다. 실눈으로 졸고 있는 사랑이를 확인하고 나니, 뭔가 대단히 똑똑한 집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와의 행복한 동거를 위해 한 가지 막중한 미션을 성공해낸 기분이랄까? 굉장히 뿌듯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되고 걱정도 되었다. 사랑이도 고양이가 처음이고 나도 제대로 시작하는 집사는 처음이니까.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벌써 한 가지 큰 일을 해내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그렇게 아기 고양이와의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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