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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29. 2020

단단히 삐진 아기 고양이

주사는 너무 싫어

고양이


 나는 아직 언니한테 화가 잔뜩 나있어. 그래서 책상 아래 구석진 곳에 마련된 나의 은신처에 들어가서 몸을 말고 누워있는 중이야. 언니는 집에 돌아온 후로 계속 나를 달래주고 있지만, 나는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계획이야.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냐고?


 그건 언니 때문이기도 하고 주사 때문이기도 해. 어찌 됐든 언니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서 화가 단단히 났어! 난 그곳에서 엄청나게 끔찍한 일을 당했거든.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고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야. 화가 나서 잔뜩 부푼 꼬리를 진정시키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오늘은 평소보다 언니가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어. 언니는 원래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나랑 놀아주는데, 오늘은 옷도 안 갈아입고 놀아주지도 않는 거야. 걱정 어린 눈으로 날 내려다보더니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기 시작했어.  


 “사랑~ 오늘 병원 가서 주사 맞아야 하니까 간식 먹고 씩씩하게 다녀오자!”


 병원? 주사? 처음 듣는 말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간식을 기분 좋게 먹었어. 그런데 언니가 간식을 슬금슬금 네모난 가방으로 집어넣는 거야. 그 가방은 언니와 함께 서울에 갈 때 내가 들어가 있었던 가방이었지.  


 ‘어라? 항상 구석에 두던 가방을 왜 갑자기 꺼낸 거지?’


 뭔가 이상했지만, 나는 간식을 따라서 가방으로 들어갔어. 내가 가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언니는 가방 문을 닫더니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어.

 나는 가방 틈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깃든 낯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어디에 가는 걸까 생각했어.


 ‘도대체 갑자기 어디를 가는 걸까? 드디어 언니와 같이 사냥을 하는 건가?’

 

 가방 밖이 보이지 않았지만, 빵빵거리는 큰 소리도 들려오고, 언니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가방 사이로 들어왔다.

 나는 신기한 소리와 낯선 냄새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너무 궁금했어. 그래서 가방 밖을 보려고 가방을 머리로 밀었고, 그때마다 언니는 이렇게 말했어.


 “사랑이~ 이제 곧 병원 도착해. 조금만 참자!”


아까부터 병원, 병원 하는데 도대체 병원이 뭘까? 오늘 내가 무찔러야 하는 사냥감의 이름인가? 아님 엄청 재밌는 장난감인가?


 나는 너무 궁금해서 병원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어.


 띵동-띵동-



 어딘가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언니의 움직임이 멈췄어. 드디어 병원에 도착한 걸까?


 그때였어. 언니가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어.


“안녕하세요. 사랑이 예방 주사 맞으러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몇 번째 접종인가요?”

“오늘 첫 접종이에요!”

“그러시군요. 네, 접수해드렸습니다. 사랑이 바로 들어갈게요~”


 내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다른 말들은 하나도 이해가 안 됐어. 주사라는 걸 하는 날이고, 그 주사를 처음 한다는 얘기 같았어. 주사가 뭐지? 정말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


 그래서 가방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부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 그때 ‘지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렸어.


“사랑이~ 수의사 선생님이 사랑이 보고 싶대.”

“안녕, 사랑이는 정말 작구나. 선생님이 사랑이가 건강한 지 좀 볼까?”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어. 나는 처음 보는 인간이 불쑥 나타나서 조금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어.

 수의사 선생님이라고 하는 인간은 나를 번쩍 들더니, 나를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어.

 

 내 귓속도 보고, 눈꺼풀도 뒤집어보더라고. 그리고 내 이빨도 만지고 발을 꾹꾹 누르면서 발톱도 보는 거야.


 거기까지는 괜찮았어. 언니가 나한테 종종 하는 행동이라 참을만했거든.


“아이가 아주 건강하네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다행이네요. 눈곱이 자주 끼는데 그건 왜 그럴까요? 그리고 몸무게는 적당한가요?”


 언니는 의사 선생님이랑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그건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왜 그걸 저 인간한테 물어보는 걸까? 저 사람이 나에 대해서 뭘 알겠어.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수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았어.


“음…. 모래를 다른 것을 써보시거나, 자주 갈아주심이 어떨까요? 아이 몸무게는 딱 좋습니다.”


 어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 선생님 인간이 어떻게 알고 말해주는 거지? 이봐, 인간! 너는 내 말을 이해하는거야?


"애옹! 애오옹!"

"사랑이도 선생님 말이 맞는거같다는 것 같네요. 하하하."

"그런가봐요. 모래를 한 번 바꿔봐야겠어요!"


 내가 직접 말해주지 못해서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언니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데, 저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듣고 언니에게 제대로 말해주어 다행이었어.   


“자, 그럼 사랑이 예방접종 1차 맞을까요?”

“네! 오늘 사랑이가 주사를 처음 맞는 거라서요. 안 아프게 살살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드디어 주사를 만날 때였어. 나는 주사가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잠시 뒤,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의사 선생님이 이상한 냄새가 나는 뭔가를 들고 왔어. 선생님의 손에 들려진 것은 뾰족하고 반짝거렸는데, 안에 출렁출렁 거리는 물 같은 게 들어있었어.


 선생님은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수건을 덮었어. 그러더니 나의 몸을 단단히 잡았. 순간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앉아있는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어.


“애오옹! 애옹! 애오오옹!”


 따끔! 갑자기 내 목덜미에 날카로운 통증이 뜨겁게 느껴졌어. 처음 느껴보는 찡한 아픔에 깜짝 놀랐지. 이게 주사라는 걸까?


 내 목덜미에서는  코 끝을 찌르는 알싸한 냄새도 났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지. 언니는 잔뜩 털을 곤두세운 나를 달래면서 다시 가방에 넣어주었.


 그 이후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왜냐하면 돌아오는 길 내내 딱 세 가지 생각만 하면서 왔거든.


 첫 번째 생각은  주사는 날 아프게 하는 녀석이니 절대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나면 꼭 복수하겠다는 것.

 마지막으로 언니에게 단단히 삐져야겠다는 것.


 언니가 가방 문을 열어주자마자 나는 후다닥 뛰어나가서 나의 은신처에 숨어있었어.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니는 날 달래주는 중이야.

“사랑이~ 주사 많이 아팠지?"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걸까? 역시 언니는 주사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


 "사랑, 근데 의사 선생님이 사랑이 주사 맞아야 한다고 해서 간 거야."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고? 정말?


 "언니도 우리 사랑이한테 주사 맞히러 병원 가기 싫었어.”


 주사로 날 아프게 한 게 모두 의사 선생님의 짓이라고?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빼꼼히 은신처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어. 그리고 언니한테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지.


“애옹! 애옹!”

“우리 사랑이 밖으로 나왔어? 언니가 미안해. 근데 주사를 맞아야 사랑이가 더 튼튼해진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


 음…. 그 주사가 나를 더 튼튼한 고양이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구나. 하지만 미리 말해주었다면 내가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텐데. 나는 언니에게 다음에 또 주사를 만나는 날에는 미리 말해달라고 말해주었어.


 "냐아! 냐아오옹! 냐옹!"

 "알겠어, 알겠어. 오늘 사랑이 너무 잘했어요~ 아주 용감했어요~"


 언니는 내 말에 대답을 해주더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고기 간식을 줬어.

 용감한 사냥꾼은 닭고기 간식을 모른척해선 안 되는데, 이번에는 용서해줘도 되겠지?


 다음에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미리 말해주어야겠어. 주사를 가지고 올 때는 미리 말을 해달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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