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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25. 2020

집사는 캔 따개

육묘일기

집사


 아기 고양이는 정말 인간 아기와 같지 않을까? 사랑이와 함께하는 동거는 내게 매 순간 즐거움을 주고, 고양이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체력적인 피곤함으로 인해 날 허덕이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은 초보 집사로서 육아일기가 아닌 육묘 일기를 써보려 한다. 육아는커녕 결혼도 안 한 29세의 집사는 사랑이를 통해 모든 부모님들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육묘 경력 2개월 차인데,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나를 키우고 계시니 말이다.

집사의 친구가 지원해준 간식 퍼레이드

 아기 고양이는 자주 먹는다. 원래 고양이 조금씩 여러 번 자주 먹는 본능이 있다고 하는데, 아기 고양이는 어른 고양이인 성묘에 비해 먹는 빈도수가 더 많다.


 사랑이가 나와 함께 상경할 때는 2.5개월 정도 되었다. 그래서 사랑이는 부드럽게 불려 사료를 먹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자율급식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3개월도 안된 아기 고양이라, 아이가 배고프지 않도록 식사를 잘 챙겨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가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미리 습식 캔과 사료, 간식 등을 준비해두었다. 지인들에게 선물도 받고, 할인 행사하는 곳을 찾아 습식을 가득 구매했다. 그리고 구매 쿠폰을 모아서 간식들도 싸게 사두었다.


 나의 간식  주전부리 비용이  사랑이의 습식 캔으로 등가교환이 되었달까? 어쩌다 보니 나의 다이어트를 도와준 습식 캔은 사랑이에게 아침과 저녁식사로 제공되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한 사진

 

 사랑이의 식사는 대게 아침 7시 시작된다. 내가 일어나지 않아도 그 시간쯤 되면 사랑이가 내 위에서 걸어 다니며 잠을 깨워준다. 아니, 내 뱃살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게 조금 더 비슷한가?


 요즘은 제법 고양이처럼 '옹'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깨워준다. 사랑이 스텝 기술과 '애옹'스킬 덕분에 나는 휴대폰 알람에 의존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는 자립적인 사람이 되었. 그리고 동시에 주말에도 아침 7시에 기상해야 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춤추는 건 괜찮은데, 물진 말아줘.

  사랑이는 내가 습식 캔을 따는 소리만 들리면 골골 송을 시작한다.

 "사랑이~ 사랑이는 언니를 캔 따개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냐아~ 냐아아아!"

 "그래. 캔은 언니만 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냐! 냐아! 냐악!"

 "알겠어~! 빨리 줄게. 화내지 마."


 자칭 캔 따개가 되어버린 나. 밥을 늦게 주면 사랑이에게 혼쭐나는 캔 따개 집사.


 하지만 나는 행복한 캔 따개니까 괜찮다 '셀프 위로'를 하 사랑이가 밥 먹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사랑이가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 이것이 바로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것인가!


 캔 따개 집사는 사랑이의 캔 값을 벌기 위해 출근 하기 전, 아기 고양이용 사료 그램수를 맞춰 준비고 나간다. 러면 사랑이는 내가 출근 있는 동안, 사료를 조금씩 나눠먹는다.


 이것으로 사랑이의 식사가 일까? 그럴 리가! 사랑이의 식사는 내가 퇴근 에도 이어진다.  

 저녁 식사로 아침에 먹었던 습식 캔을 마저 먹고, 사냥놀이 후 보상으로 삶은 닭가슴살도 먹는다. 그리고 영양제 겸 간식도 한 팩 먹고, 자기 전에 침대에서 분유 마시면 끝이 난다. 

 사랑이가 분유를 마실 때, 나도 사랑이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서 우리의 하루가 끝이 난다.

분유통을 손으로 꼭 잡고 먹는 사랑

 

 여느 때 없이 오늘 저녁도 침대에 누워서 사랑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사랑이의 골골 송을 들으며 사랑이에게 분유를 먹이는데, 슬며시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내가 오늘 뭘 먹었나 생각을 해보, 작은 컵라면에 편의점표 구운 계란 두 알이 전부였다. 새삼 배불리 먹고 있는 사랑이가 부러웠다.


 "사랑, 언니 배고파."

 "고롱, 고로롱..."

 "사랑이 닭가슴살 언니가 먹어도 돼?"

 "고로롱, 고로롱..."

 "아! 삼겹살 먹고 싶다! 연어도 먹고 싶다! 닭발!"


 새삼 식욕이 터져버린 집사는 잘 먹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 아니 육묘할 때, 캔 따개 집사도 잘 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집사는 챙겨줄 이가 없으니 스스로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집사가 끼니를 잘 챙겨 먹어야 주인님의 닭가슴살을 안 훔쳐먹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의 육묘 일기는 '집사도 잘 먹자.'로 끝맺으려 한다. 간식 사는 돈이 아까워서 안 사 먹고, 사랑이 캔을 사는 집사. 하지만 간식을 포기한 대신, 나의 끼니도 사랑이의 식사처럼 훌륭하게 챙겨 먹기로 다짐했다. 사랑이의 닭가슴살을 지키기 위함도 있지만, 매일 아침 사랑이가 탭댄스 추는 내 뱃살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오늘의 육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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