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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18. 2021

또 내 발톱을 자르는 거야?

모른 척해줄게

고양이


아, 정말 이 언니가! 오늘 내 발톱을 깎으려고 하.


언니는 내가 잘 때 몰래 하는 게 많아. 지금처럼 발톱을 깎으려고 하지를 않나, 눈곱을 닦아주질 않나, 내 이빨을 구경하질 않나. 심지어 귓속까지 청소한다니까? 

이게 다가 아니야.

어떤 날은 내가 잘 때 나의 소중한 엉덩이를 축축한 휴지로 닦기 해.


내가 아기 고양이도 아닌데 언니는 왜 그러는 걸까?

치 내가 혼자서 세수도 못하는 아기 고양이한테 하는 것처럼 그러잖아.

사실 나는 잠에 들더라도,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도 잘 듣고, 누가 나를 만지는 것도 다 느낄 수 있어.

나와 같은 고양이들은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사냥꾼인 거 알지?

그래서 나는 아무리 깊게 잠들어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 수 있다고.

그런데 언니는 그 사실을 모르  틀림없어.



그래서 오늘도 언니는 내 발을 조심스럽게 만지작만지작하고 있지 뭐야. 


에휴, 오늘은 그냥 넘어가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야.



언니는 지난번에 있었던 '그 일'때문에 내가 깨어있을 때 발톱을 깎는 것보다, 자고 있을 때더 쉽다는 걸 파악했을 거야. 

나도 '그 일' 이후에는 언니가 몰래 내 발톱을 깎는 걸 조금 봐주고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희들에게도 말해줄게.

미리 말하지만 나만 잘못한 건 아니야. 물론 내 잘못도 있지. 하지만 언니의 잘못도 있으니까 나 나쁜 고양이라고 면 안 돼? 알겠지?


나는 누군가 내 발을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내 발바닥은 몰랑몰랑해서 쉽게 상처가 날 수 있거든. 그래서 내 발바닥을 만지는 건 언니한테만 허락해주고 있어.

그리고 내 발톱 사냥할 때 필수적인 무기이기 때문에 발바닥과 함께 중요하게 관리해주고 있지.


근데 그 날은 유독 언니가 날 놀라게 했었어. 그때 나는  창 밖을 구경하고 있었. 그런데 갑자기 언니가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내 앞 발톱을 하나 '딸깍!' 하고 아버리는 거야! 

깜짝 놀란 나는 발톱을 세워서 언니의 손을 세게 긁어버렸어.

언니는 매우 아파하는 소리를 내면서 나를 풀어주었지. 나 언니를 그렇게 아프게 하려던 건 정말 아니었어. 그런데 너무 놀라서 언니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을 깜빡하고 세게 긁어버린 거야. 


언니는 많이 아파하면서 자기 손에서 난 피를 닦고 있었어.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어떡하지? 언니가 날 미워하면 어떡하지?'


나는 언니가 너무 걱정이 되었어. 그리고 너무 미안했지. 그래서 가만히 이불 구석으로 들어가서 언니의 표정을 몰래  살펴보고 있었어.

그때 언니가 냉장고를 열더니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가져오는 거야.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어.


"사랑~ 에고, 이렇게 놀라게 하면 안 되는 건데. 언니가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

"애오옹!"

"우리 맛있는 영양제 먹으면서 발톱 깎아볼까?"


뭐지? 언니는 화가 난 게 아닌가?

언니는 내 콧잔등을 쓰담 쓰담해주면서 간식을 주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내 발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잡고 다시 발톱을 깎기 시작했어.

나는 언니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

'내가 언니를 아프게 했는데 왜 언니가 사과를 하는 거지?'

 

나도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언니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 나도 사과의 의미로 얌전히 언니가 발톱 깎는 것을 허락해주었.


그렇게 우리의 발톱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지.

에이, 오늘도 그냥 모른척하고 언니가 발톱을 깎게 둬야겠어. 발톱이야 다시 자라나니까 말이야.


얼른 깎아줘. 그래도 조심히 깎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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