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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29. 2021

고양이가 당신에게 한마디 말을 건넨다면

이 한마디면 충분해

집사


사랑이가 오늘따라 영 기운이 없다.


두 달 전, 사랑이는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기본 예방접종을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3차 접종을 맞아야 한다며 동물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사람도 병원에 가는 걸 싫어하는데 고양이는 오죽할까.  

사랑이에게는 이미 앞선 두 번의 예방접종 때문에 동물병원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집사로서 최대한 사랑이가 동물병원에 대한 나쁜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 해야했다.


그래서 닭가슴살에 열빙어 간식, 사랑이가 좋아하는 영양제 간식까지 총동원했다.


그렇게 사랑이를 달래 가며 동물병원 무사히 다녀왔다.


그런데 동물병원을 다녀온 이후로 사랑이가 도통 기운이 없는 것이 아닌가.

'삐졌나? 주사 맞은 곳이 아픈가?'


사랑이가 내게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지금 나한테 화가 난 건지, 그냥 졸린 건지, 아님 아픈 건지 알 수 있을 텐데.


내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짧은 다리로 세면대 위까지 쫄래쫄래 올라오는 사랑이.


하지만 오늘은 올라오지도 않고, 밑에 앉아서 날 빤히 보기만 했다.



만약 당신이 반려동물과 살고 있고, 그 반려동물이 당신에게 딱 한 마디의 말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예전에 SNS에서 위의 질문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사랑이와의 삶을 시작하기 전이, 그 질문은 내게 딱히 생각할 값어치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궁금하다.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위의 질문을 다시 한다면,

혹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저런 말을 건넨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  마디를 선택할 것이다.


 

- 아파.


세 글자면 충분하지 않을까?

말을 하지 못하는 생명체들은 몸이 아파도 아프다고 리에게 알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고양이들은 신체적 고통이 생겼을 때, 이를 숨기려 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고양이 겉으로 고통을 들어내거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이 보여서 동물병원에 가보면,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네가 아플 때 우리에게 아프다고 말해주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파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아픔을 줄이는 노력을 해볼 기회와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게 말이다.


정말 램프의 요정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면 좋을 텐데. 

알라딘이 아니라 슬픈 나는 오른쪽 볼에 붙어서 새근새근 숨 쉬는 사랑이콧김을 느끼 고민에 잠겼다.


'오늘 저녁은 기운 차리게 영양가 높은 것으로 준비해볼까?'

'근데 갑자기 새로운 거 먹어서 설사하면 어떡하지?'

'주사약이 너무 강한가?'

'에잇, 그냥 병원에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


동물병원이 전화해서 사랑이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이 불안한 걱정을 해결하기로 했다.  


대폰을 찾으려고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내 볼에 붙어있던 사랑이가 내 귀를 '앙'하고 물어버렸다.


"으악!"



"너 이 녀석, 방금까지 내 볼에 늘어지게 기대어서 쉬더니, 왜 갑자기 나를 무는 거야?"

"애옹!"


얼얼한 뺨을 만지며 사랑이를 쳐다보았다.

완벽한 원에 가까운 사랑이의 두 눈동자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에게는 감정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고양이의 뇌는 상위의 감정을 느낄 만큼 발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이가 나를 쳐다보는 눈에서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사랑이를 그렇게 보기 때문일까?

어쩌면 사실 사랑이는 감정을 느끼는 슈퍼고양이인 것은 아닐까?


상상인듯 망상같은 생각을 하고있는 나를 보며 참 팔불출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사랑이가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오른쪽 뺨을 사랑이에게 내주었다.



일단 나도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같이 한 숨 자야겠다.

침대에서 일어났다간 내 뺨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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