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시간이 조금 더 느리게 흘렀던 90s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떤 치킨을 먹을까’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기대가 설렘으로 바뀔 때 즈음,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었다. 지금의 스타벅스 프리퀀시처럼 치킨집마다 각각의 화려한 형형색색 프리퀀시 드레스를 입고 나를 부르곤 했었다. 멕시카나, 처갓집, 페리카나, 동큐치킨 등 집집마다의 특이한 개성이 있었다. 배는 고팠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때, 지금처럼 풍족하지만 허전한 이 시간 속에서 그 시절의 따스함이 더욱 간절히 그립다.
바야흐로 지금은 50여 가지가 넘는 치킨의 홍수시대이자 진정한 치킨게임 시대에 살고 있다. 90년대와 비교해서 10배 정도 성장한 치킨집의 성공 비결은 어디 있을까? 국민적 간식이자 외식문화 성장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이 첫 번째로 기여되었기도 하겠지만, 씁쓸한 이면인 1997년 IMF 금융위기가 떠오른다.
IMF 경제위기와 같은 어려움은 대한민국에서 치킨집 증가에 기여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산업적으로 치킨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의 경제 구조와 창업 문화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제공했으며, 1997년의 IMF 외환위기이자 유동성 위기는 구조 조정을 통한 대량 실직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본업을 떠나 자영업이 증가한 것이다.
자영업 운영에 우선순위로 치킨집이 선택되었는데 그 이유는 낮은 창업 비용, 간단한 운영 방식, 안정적인 수요, 배달 문화였다. IMF 구조 조정과 취업 시장의 한파로 많은 실직자들이 창업 시장으로 눈을 돌렸을 때 좀 더 작은 대출을 활용해 볼 수 있는 치킨집은 그렇게 문화적 아픔을 가지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재계와 산업계는 때아닌 초비상이다. 트럼프 2.0 시대가 오기도 전, 정치 리스크는 재계에 먹구름 같이 다가왔고 피해 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환율과 주식 방어에 국가의 세금이 녹아내리고 있고, 우리의 원화는 한때의 가치와 희망을 머금은 채 소각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재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남은 것은 열기 속에서 희미하게 떠도는 기억의 흔적과 사라진 꿈들뿐이다. 국회는 정치 정쟁 싸움에 마비가 되었고, 어둠 속에서 간신히 빛나던 촛불이 마침내 심지가 꺼지듯 희미해진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시대의 디지털 난민들은 치킨집이라는 난민촌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프랑스 대 혁명 시기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했던 것처럼 치킨이 안되면 커피 전문점이라도 차려야 할까 대한민국 자영업 수는 574만 명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에서도 한국 자영업 비율은 24% 정도로 주요 선진국이 10%인 비율에 비해 상당히 높다.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대안이 없다는 말이다. ‘전공이 무슨 상관이냐, 결국 치킨집을 차리게 된다’는 말은 시대가 변해 치킨은 누구에게나 마지막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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