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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Feb 01. 2022

임신과 커리어의 양립

[퇴사일기#25] 나 이대로 주부되면 어떡해!

 퇴사 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약 5개월의 시간을 보냈고, 다가오는 상반기에는 재취업에 도전할 생각이었습니다. 면허와 전문 자격증, 외국어 성적을 만드는 일에도 욕심이 있어서 꽤 바지런을 떨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부작거리던 12월 말, 선명하게 보인 빨간 두 줄이 제 모든 계획을 가로 막았습니다. 마치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은 금지라 말하는 듯한 새빨간 두 개의 선, 임신 4주차였습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 일상이 달라졌습니다. 당장 먹던 비타민까지도 바꿔치워야 했던 지난 한 달의 시간 속에서, 임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계획과 달리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저를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정말 두려웠습니다.


 사실 처음 임신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임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9개월 후에 출산하는 직원을 뽑는 것이(혹은 면접을 보는 것이) 합리적인가 생각해보니 제 생각이 억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만으로 민폐 였습니다. 결국 재취업의 계획을 접었습니다.


"나 이대로 주부되면 어떡해!"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날, 어제까지 마시던 커피 대신 우유를 주문하고서 남편과 대화를 나누던 중 튀어나온 저의 속마음이었습니다. (임신 초기에는 카페인을 피해야 합니다.) 남편 말로는 제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는데, 밖에서 그렇게 엉엉 울었던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무엇에서 시작한 두려움이었을까요. 생명 탄생의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수틀린 제 계획을 보상 받을 수 있을 만큼 임신 생활을 잘 보낼 수 있을까요.





 '임신은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 나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임신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느끼던 서른의 저는, 현재 직장에서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출산휴가 조차 마음 편히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 부분을 회사에 대한 미래성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도 퇴사 사유 중에 하나인 셈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미처 몰랐던 그 때에도 임신과 커리어의 양립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제가 본 워킹맘들은 대부분 이 고민에서 커리어를 포기했습니다.


 아무래도 소득 면에서 배우자(남성)가 높은 경우가 많고,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는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임신은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입덧으로 밥도 잘 못 먹고 호르몬이 불규칙해지면서 수면 패턴이 깨집니다. 몸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많이 쉬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 임신과 출산은 목숨을 건 일입니다. 현대 의학 수준으로는 출산 중 사망률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 완전히 없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보다 과거에는 출산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많았습니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이면 해야할 당연한 일, 혹은 누구나 하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산 후에도 '육아'라는 커다란 고난이 있습니다. 제가 전(前) 직장에서 정말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여자 상사의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경험도 없는 임신&출산&육아의 삼단 콤보 앓는 소리를 5년 가까이 들었습니다. 분명 5년 동안 아이는 컸을 텐데 그녀의 스트레스는 도통 줄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아랫 직원에게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는지 모르지만, 아랫 직원은 경험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쌓였습니다. 자연스레 '굳이 낳아서 저렇게까지 고생해야 돼?'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임신이 먼 미래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무소속의 백수일 때 벌어졌습니다. 역시 인간은 직접 경험을 해야 배우나 봅니다. 임산부가 되고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임신 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은 겁니다.


 임신 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타격이 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래 먹던 약은 하나도 먹지 못해서 잠을 못 자고 컨디션 조절이 힘듭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기본기를 못하니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자연스레 회사를 안 다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저는 저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회사 입장에서도 효율 없는 눈엣가시 직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근로기준법 74조에 의하면 임산부의 배려하는 제도가 존재합니다. 특히 ⑦항, ⑨항의 두 가지 조항이 눈에 띕니다. 실질적으로 임신한 근로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⑦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1일 근로시간이 8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1일 근로시간이 6시간이 되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다.
⑨ 사용자는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1일 소정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각 변경을 신창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한다

 제 전(前) 직장의 경우 해당 근로기준법이 이행된 경우를 본 적이 없지만, 남편의 직장에서는 7번 항을 이행하는 근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얘길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만약 직장을 다니면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근로자 본인이 취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임신과 회사 생활을 슬기롭게 병행하는 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신은 후대의 여성들도 겪게 될 수 있는 일입니다. 현존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인 건강 챙기고, 임산부를 배려하는 데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속 요구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여성이 임신하는 일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법과 제도가 생기고 더 나은 근로 환경을 갖추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임신과 커리어의 양립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되도록 저도 계속해서 써나가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성별 중에서 '임신'으로 신체적 타격을 받는 것은 단연코 여성일 겁니다. 임신이 가능한 남성이 임신을 포기하는 상황이 아니라, 형질적으로 결정된 사항이자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지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기에 형질적으로 결정된 사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임신과 커리어가 양립할 수 있도록 더욱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게 맞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위치를 잃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이익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서 배려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냐고, 어찌 되었던 임신을 선택한 것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기적으로 볼 문제가 아닙니다. 혹자와 같은 이치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점점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이 문제는 국가 존폐의 위기와 직결됩니다. 인구가 이어져야 이 사회와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법과 제도로 여성의 커리어 문제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대립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좋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시작은 여성의 임신과 커리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선순환이 계속되어 임신한 여성이 회사에서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더불어 여성으로서 주어진 생물학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임신한 여성들이 새롭게 찾아온 생명을 온전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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