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히가시노 게이고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이 밀리의 서재에 떴다.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용의자 X의 헌신》도 등장. 책으로 보려다가 추리소설인만큼 오디오북도 재밌을 것 같아 듣기 시작했다.
성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음향 효과가 소설을 귀로 읽는 색다른 경험을 선물했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던 활자 독서와 달리, 목소리가 살아 움직이며 감정을 불어넣는 듯했다. 과거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기분. 추리소설의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전개가 귀를 타고 흐르자 몰입감이 배가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이웃에 사는 야스코의 범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이야기다. 범죄와 사랑,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교묘히 엮어낸 추리소설로, 예상치 못한 반전이 독자를 놀라게 한다. 이시가미의 대학 친구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되고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데, 두 천재들의 두뇌게임이 흥미롭다. 사건의 결말은 인간 삶의 의미와 아이러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시가미의 헌신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철저히 수학자다운 사랑이었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모든 상황을 문제로 치환해 가장 완벽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야스코의 위기는 이시가미에게는 하나의 방정식과도 같았고, 그 해답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감추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대신, 그녀를 보호하고 지키는 완벽한 해답을 선택했다.
그 해답은 논리적으로 완벽했을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가장 고립되고 슬픈 선택이었다. 이시가미는 사랑 앞에서조차 감정을 공식처럼 정리하려 했지만, 결국 그 공식은 파국을 향해갔다.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천재 수학자조차 비이성적인 인간의 감정과 사랑 앞에서는 연약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아직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보지 못했거나,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오디오북으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디오 콘텐츠로서의 완성도와 몰입도에 대한 만족감이 컸기 때문이다. 소설이 주는 긴장감과 감정의 격동까지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덕분에 긴 출퇴근길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