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위 Nov 14. 2023

엄마는 언제 나를 사랑해?

2022.9.22.


튼튼이의 어린이집이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모래마당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작아지는 등 아쉬움이 많았지만, 집 근처로 온 덕분에 하원이 좀 쉬워지리라 기대했다. 하원 때마다 차에 안타려는 아이를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해서 차에 태우는 것부터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그런데 이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그 짧은 거리를 튼튼이와 나는 정말 힘겹게 하원한다. 튼튼이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슈퍼에 들러서 무엇이든 단 게 잔뜩 들어가 있는 간식도 사먹고 싶고, 또 걷기는 싫어서 늘 찡찡대며 안아달라고 한다. 아이의 마음에서 달디 단 간식을 물리치고 나면 이제는 어떻게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갈지 생각하느라 하원길에 내 머릿속은 언제나 분주하다. 그러다보면 튼튼이는 한두번씩은 꼭 울고 온다.


어제는 하원길에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나보다. (이걸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마실이라고 한다.) 그게 너무나 마음이 상했는지 오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도저히 못걷겠다고 해서 안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현관에 주저 앉아서 꺼이 꺼이 울기 시작한다.


"엄마는 나 친구집에 놀러도 못가게 하고!"


아이의 울음과 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말. 놀러를 못가게 한 게 아니라 오늘은 놀러가기로 약속한 게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아이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튼튼이는 나무와는 성향이 다르다. 친구들이 너무 너무 좋고, 언제나 친구집에 놀러가거나 친구를 초대하고 싶어한다. 나는 출근을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야하고, 얕디 얕은 체력 덕분에 10시에 잠들지 않으면 다음날은 하루 종일 힘들거나 편두통의 공격을 받기 일쑤라 평일에 아이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나무는 동생의 친구들이 놀러오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놀잇감들로 아이의 마음을 돌려보지만 쉽지 않다. 튼튼이는 요즘 요거트에 올리고당 뿌려 먹는 걸 좋아하는데, 요거트를 내밀자 아이가 눈물을 닦고 씨익 웃는다. 우리집 아이들은 엄마 닮아서 그런지 역시 먹을 것에 약하다. 요거트를 먹고, 책을 보는 동안 튼튼이의 마음에 평화가 돌아왔고, 학원에서 나무가 돌아오면서 마실을 가지 못한 설움은 슬며시 모습을 감추었다.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잠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튼튼이가 웃으며 와서 안긴다. 그리고는 묻는다.



엄마는 언제 나를 사랑해?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내가 울면서 화낼 때도? 라고 되묻는다. 내가 터전에서 집에 올 때 안아달라고 할 때도? 내가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할 때도? 하면서 엄마가 화난 표정을 지었던 순간들을 하나씩 들이민다. 그 순간에도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정말 궁금했던 모양이다.


"튼튼아,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니가 엄마 말 안들으면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엄마 안에 딱 붙어 있어."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웃으며 놀잇감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들과 얘기하다보면 가끔, 저 아이들 마음 속에는 어떤 마음이, 생각이 자라고 있을지 궁금한 때가 많다. 다섯 살이 되면서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늘어나고, 가끔은 굉장히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뜨끔하게 하기도 한다. 튼튼이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내가 아이가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 순간에 진심으로 화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사춘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무도 그렇고, 조금씩 자아가 커가고 있는 튼튼이도 그렇고. 나는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우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내 뜻에 따라주지 않을 때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튼튼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화를 낼 때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겠지.

엄마의 새벽 출근 때문에 튼튼이는 아빠와 자는데, 어제는 튼튼이가 울면서 나에게 왔다.


"엄마, 머리카락을 위로 넘기고 자고 싶은데 안돼. 머리 묶어줘."


머리카락이 애매한 길이라 불편했던 모양이다. 튼튼이를 옆에 눞이고 머리카락을 위쪽으로 넘겨주었다. 괜찮아. 튼튼아. 머리카락이 또 내려오면 엄마가 다시 올려줄게. 토닥토닥 하니 어느새 잠들었다. (어쩌면 내가 먼저 잠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쌔근쌔근.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잦아들면 내 마음에도 금세 평화가 찾아든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이에게 자꾸 배우게 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다. ^^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살 터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