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쓴 사랑의 성서를 읽다가 생각한다
신대륙을 향한 달뜬 믿음 끝엔
언제나 피 흘리는 아픔이 있었지
이제 나는 반투명한 책갈피에 모로 누워
고요히 깔려 죽기를 기다린다
바싹 말라 한 페이지를 가름할 수 있다면
기척도 없이 기쁠 거야
하지만 사실 그 페이지는
누구도 읽지 못하길 바라
네가 까무룩 잠든 밤
우리가 공저한 마지막 페이지에 이어
나는 몰래 적을 거야
가랑이 사이로 누구든 왔다 가면
살아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
그렇게 삶이 붉은색임을 느낄 수만 있다면
문고리쯤 부수고 영영 잠기지 않은 채로 살아갈 거야
닿지 않길 바랐던 대륙에서
웃으며 곡을 하고 곡을 하다 춤추며 죽어갈 거야
그걸 읽은 너는 얕은 밤부터 울기 시작하겠지
지키지 못한 사랑이라는 단어를 안고
내 혈관을 흐르는 죄악감에 몸을 싣고
하지만 그만 울음을 멈춰줘
사라질 것들이 사라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슬퍼할 테니
내가 일생 배운 침묵의 밀어
그것은 쉬이 잊히지 않는 헌장처럼
양각으로 등짝에 새겨져 있어
네 곁에 바로 누운 그 밤
나는 비명을 삼키며 몸을 뒤척였지
환희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만용을
사형에 처하는 조항을 깎으며
그래서 나는 지금 네가 쓴 사랑의 성서에 모로 누워
고요히 깔려 죽기를 기다린다
네가 잠에서 깨어 대양을 노 저어와
붉게 젖은 눈짓으로 책장을 넘기기를
부디
가벼이